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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3시간전

세라 워터스 《게스트》

세심한 시대 묘사 위에 휘몰아치는 로맨스와 범죄물의 혼종...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920년대의 런던이다. 프랜시스는 전쟁 중 오빠와 동생을 잃었고 이후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게 되었고, 프랜시스는 어머니 레이 부인과 함께 어렵게 커다란 저택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젊은 바버 부부를 세입자로 들이기로 결정하였다.


  “... 그들은 테이블 너머의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둘 사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프랜시스는 이 느낌을 빗댈 만한 적절한 표현을 요리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다. 달걀흰자가 뜨거운 물속에서 진줏빛으로 변하는 듯한, 우유 소스가 냄비 안에서 걸쭉해지는 듯한, 미묘하면서도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변화. 바버 부인도 그걸 느꼈을까? 분명 느꼈을 것이다...” (p.118)


  저택의 일부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살아가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프랜시스는 자신의 침실 위에 위치한 바버 부부의 생활 영역을 의식해야 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부엌을 지나쳐야 욕실에 당도할 수 있었고, 남편인 레너드는 종종 프랜시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바버 부인을 릴리언으로 부르기로 한다. 프랜시스가 자신의 과거, 그러니까 실패한 동성 연애를 실토한 뒤이다.


  “릴리안은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되기를 기도하는 거지? 프랜시스는 의문이 들었다. 이 곤경의 본질이 무엇인지가 헷갈렸다. 둘 다 여자라는 점? 릴리안이 유부녀라는 점? 그 두 가지가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린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한 가지를 풀어봤자 나머지 한 가지가 여전히 꼬여 있었고, 그것까지 기껏 풀어냈을 땐 먼젓번 것이 도로 꼬여버렸다...” (p.357)


  이제 프랜시스와 릴리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릴리언은 프랜시스와 사랑을 나눈 후 남편인 레너드가 있는 이층으로 올라간다. 프랜시스는 레너드가 잠든 후 릴리언이 자신의 침대로 찾아와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고 그만큼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엄마를 의식해야 하는 프랜시스, 남편의 눈을 피해야 하는 릴리언은 점점 지쳐가고 어느 날 폭발한다.


  “하고 싶은 말이 천 가지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바이니 부인과 베라가 바로 옆에 있었고, 프랜시스의 어머니는 북적거리는 인도에서 서서 긴장한 시선으로 지켜보았고, 심지어 이제는 켐프 경위까지 나타나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랜시스는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손길이 너무 어줍어서 마치 동물 앞발이나 권투 글러브를 낀 손으로 툭툭 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p.539)


  어느 날 프랜시스와 릴리언은 두 사람의 사랑을 레너드에게 들킨다. 발각과 노출이 뒤섞인 그 이후 레너드는 우발적인 살해의 대상이 되고, 릴리언의 요구에 따라 두 사람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로 한다. 밤새 비가 내린 그 날 시체는 저택의 바깥으로 옮겨지고 이제 소설은 두 여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링이라는 로맨스 장르를 건너 뛰어 범죄 스릴러물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언가가 없어진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짐이 생겨난 상태에 가까웠다. 이전과는 또 다른 형태와 무게의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홀가분함은 사라졌다...” (p.732)


  소설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데, 특히나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긴박한 흐름은 대단하다. 큰 범죄를 저지르고 들킬 것을 염려하며 쫓기는 악몽을 꾼 적이 있는데, 그 꿈만큼이나 현실감 있게(?) 읽는 이를 휘어잡는 대목들이 즐비하다. 프랜시스와 릴리언의 역할 교체는 이후 어떻게 진행될까, 이 살인은 의도적인가 우발적인가 하는 물음 등이 해소되지 않지만 이를 아쉬워할 틈도 주지 않는 긴밀함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세라 워터스 Sarah Waters / 게스트 (The Paying Guests) / 자음과모음 / 739쪽 / 20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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