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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3시간전

정소현 외 《2022 제67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기억하기 위하여 소환하는 생활 반경의 아득한 가까움들...

  정소현 「그때 그 마음」

  올해의 수상작이다. 순정과 혜성은 영국문화원 어학원에 다니면서 한 시절 친구로 지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 후에 각자의 사정으로 헤어졌고 23년이 지난 이제야 재회하게 되었다. ‘그때 그 마음’이라는 제목은 두 사람이 가깝게 지냈던 시기의 마음일 수 있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두 사람의 마음은 그때의 그 마음과 어느 지점에서 겹쳐져 있을 터이다. 어느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떤 순간들을 소환하기에 그들이 겪어낸 세월에 진한 한숨이 가득하지만...


  정소현 「어제의 일들」

  ”어머니는 밥을 먹고 있는 내 등을 쓰다듬었다. 밥이 가득한 입 속으로 어머니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이 복잡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p.89) 솔직히 말하자면 뭐가 다행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살아 있어 다행이고, 과거의 오해들이 풀려 다행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작가의 소설들이 참 착하구나....


  김멜라 「저녁놀」

  ”... 눈점이 아플 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저렸다. 지난달, 고양이를 키우는 동료가 고양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조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고양이도 식구고 가족이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와 눈점이는? 우리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도 못 되는 걸까. 나와 지현이는 언제까지 먹점, 눈점이어야 할까.“ (p.123) 서로를 먹점과 눈점이라 부르는 두 여자가 동거하고 있다. 주류가 아닌 그들의 사랑의 방식도, 위로 올라가기에 역부족인 그들의 경제적인 사정도 그들의 좁은 집에서 갑갑하다. 이 모든 것을 모모, 라고 이름 붙인 팬티형 스트랩이 포함된 3단계 바이브레이션이 본다, 보고 있다.


  손보미 「해변의 피크닉」

  ”... 그날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어떤 여자를 ‘예쁘다’고 표현하기까지 아주 복잡한 과정들이 수반된다는 점이었다. 그건 단순히 얼굴의 어떤 한 부분―눈이나 코, 입―이 보기 좋다건, 배열이 잘되었다거나, 그런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예쁘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어떤 요소들을 초월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pp.167~168) ‘예쁘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어떤 요소들을 초월하는 행위’라는 표현이 좋아서 담는다. 스토리라는 소설의 외곽보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장의 윤곽에 더 눈이 갔다.


  안보윤 「밤은 내가 가질게」

  ”... 언니가 개 목에 걸려 있는 은색 펜던트에 손을 댔다. 밤톨이라는 이름이 적힌, 혹시라도 주인이 찾아올까 봐 계속 걸어두고 있었다던 그것이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펜던트가 떨어져나갔다. 밤은 내가 가질게. 언니가 개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늙고 새까맣고 병든 개의 이름은 토리가 되었다.“ (p.217) 소설 속 개의 이름이 토리가 되는 과정이 정겹다. 그렇게 소설은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사는 이선, 나의 사고무친 언니, 어이없는 엄마 그리고 내가 일하는 어린이집의 주승이라는 아이를 둘러싼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이 골고루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시키고 있다.


  위수정 「풍경과 사랑」

  아들과 함께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아들의 친구에게 잠시 마음을 빼앗기는 내가 등장한다. 내가 미쳤나, 라고 자문하지만 마음이 일으키는 일을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설정이 마음껏 흘러가도록 하지는 않는다. 단편 소설이 커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장욱 「노보 아모르」

  실패한 독립 영화를 한 편 가지고 있는 나는 지금 지방의 소도시의 퓨전 주점에서 사장으로부터도 핀잔을 듣는다. 나보다는 조금 잘 나가는 여자 친구 정헤와 헤어졌다. 내가 잘하는 것은 기껏해야 상상 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것 뿐이다. 그 상상으로 퓨전 주점의 손님에게 말도 안 되는 캐릭터를 부여하곤 한다. 노보 아모르의 가사 ”만일 당신이 내 삶을 다시 써준다면, 나는 괜찮아질 거예요‘가 등장한다. 나는 끝까지 상상을 버리지 못하고 소설의 엔딩은 두 가지 버전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집에서 가까운 대학의 실험실, 그중 초파리 실험실에서 일을 하던 원영은 어느 날 폐기 처분될 초파리를 몰래 훔쳐 집으로 가지고 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탈모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나중에 소설가가 된 딸 지유는 엄마로부터 이야기를 전달받고 초파리와 탈모 사이의 인과 관계를 찾으려다 실패한다. 대신 자신의 소설을 시시하게 마무리하고 만다.


  정지돈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 아니다」

  “엠이 말했다. 시대와 불화하려면 시대를 알아야 하거든. 흠······. 싫은 걸 위해 노력할 필요까지 있나. 이해가 안 갔지만 엠은 그런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입던 옷을 입고 다녔지만 꽂히는 브랜드가 있으면 거금을 썼다.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쓰지 않았지만 한번 자를 때는 유명 디자이너의 숍을 예약했다.” (p.312) 소설의 배경은 파리인데 런던의 공유 자전거가 맴돈다. 혀가 즐겁다고 해야 하나, 정지돈의 소설을 읽을 때는 정지돈의 소설을 읽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 좋겠다.


  조해진 「허공의 셔틀콕」

  열두살 정도의 지능을 지닌 엄마는 공장에서 짝을 지어 배드민턴을 치던 남자를 아버지로 하여 나를 낳았다. 아비는 사라졌고 나는 구청의 사회복지과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미국에 사는 친척의 연락으로 오래전 입양된 이의 생모를 찾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살아가는 일보다 태어나는 일에 좀더 집중하고 있는 소설이다.


  한정현 「교코와 교지」

  오키나와 출신의 여자 시인이 쓴 시 <헨젤과 그레텔의 섬>, 그 시의 마지막 두 문장은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이다. 그리고 이 시에는 다른 한 문장도 들어 있었다. “그렇게 짧은 여름의 끝에 그이는 죽었다······” 소설은 세 명의 여학생과 한 명의 남학생이 자신들의 이름 끝 글자를 스스로 자自로 바꾸며 한 통속이 되었다. 모두들 문제가 있던 이들이 자란 곳은 광주이고, 그들이 거기 있을 때 항쟁이 있었다. 성소수자를 비롯해 재한일본인 문제,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포함하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말미에 있는 문장 하나가 잊히지 않는다. “사람은 잊고자 하는 것에 보복을 당하기 마련이다.”



정소현 외 / 2022 제67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 현대문학 / 423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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