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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9시간전

레이먼드 카버 외《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충분한 의외성을 갖고 우리에게 떨어져내리는...

  데니스 존스 〈하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조이 윌리엄스 〈어렴풋한 시간〉, 레이먼드 카버 〈춤추지 않을래〉, 이선 캐닌 〈궁전 도둑〉, 스티븐 밀하우저 〈하늘을 나는 양탄자〉, 제인 볼스 〈에미 무어의 일기〉, 제임스 설터 〈방콕〉, 메리베스 휴즈 〈펠리컨의 노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버나드 쿠퍼 〈늙은 새들〉, 메리 로비슨 〈라이클리 호수〉, 리디아 데이비스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 노먼 러시 〈거짓말하는 사람들〉, 에번 S. 코닐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 댈러스 위브 〈스톡홀름행 야간비행〉.


  “단편소설은 개념대로라면 반드시 짧아야 한다. 그것이 단편소설의 어려움이다. 그렇기에 쓰기가 매우 어렵다. 서사를 간결하게 하면서 이야기로서 기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편소설 쓰기와 비교했을 때 단편소설 쓰기의 주된 문제는 무엇을 생략할지를 아는 것이다. 남겨진 것은 반드시 사라진 모든 것을 함축해야 한다.” (p.30, 제프리 유제니디스, 데니스 존스의 〈하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를 선정하고 나서 덧붙인 말 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잡지 <파리 리뷰>가 2012년 미국에서 출간한 《Object Lessons: The Pairs Review Presents The Art of The Short Story》에 실린 스무 편의 단편 소설 중 열다섯 편을 모아 놓은 작품집이다. 각 소설은 ‘장르의 대가’라고 불릴만한 이들에게 잡지에 실린 작품 중 한 편을 골라 달라고 하여 선택된 것이다. 시기를 막론하였기 때문에 195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의 소설이 무작위로 선택되었다.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히 긁어야 하는 가려움과 같다. 이런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 특별한 감정을 영원히 안겨준다. 우리에겐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이,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주어진다. 좋은 이야기는 역설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는 듯하면서도 완벽하게 충만하지는 않다. 주어진 거라고는 조금 더 큰 존재의 작은 조각,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 관점의 전환, 몇 주 늦게 듣는 진술이 전부다.” (p.107, 데이비드 민스,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를 선정하고 나서 덧붙인 말 중)


  실린 작가 들 중에는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설터가 그나마 알만한 작가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는 정확히 레이먼드 카버스럽고, 제임스 설터 〈방콕〉에서는 제임스 설터의 뉘앙스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가 실려 있는 것은 오히려 의외이다. 필요 이상으로 유명한 작가와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린 시절 기나긴 여름이 오면 우리의 놀이는 갑자기 불이 붙어 밝게 타오르다가 영원히 사라지곤 했다. 여름은 길고 길어 한 해 전체보다 점점 더 길어졌고, 우리 삶의 가장자리를 넘어 천천히 뻗어나갔지만 그 광활한 순간마다 결국 끝을 향해 다가갔다. 그게 주로 여름이 하는 일이었다. 여름은 금세 끝날 것처럼 감질나게 우리를 놀려댔고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언제나 뒤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여름언 언제나 끝이 있었고 그러면서 영원히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놀이에 안달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놀이, 더 강렬한 놀이를 찾아다녔다...” (p.193, 스티븐 밀하우저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 중)


  이들을 제외한다면 책에 있는 작가와 작품 대부분이 생소하다. 이중 이선 캐닌의 〈궁전 도둑〉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단편 보다는 조금 길고 중편이라기엔 조금 짧은 어정쩡한 분량이었는데, 주인공의 전 생애가 반전 속에서도 꿋꿋히 몽땅 실려 있었다.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되지 않아서 더욱 마음에 들었던 것도 같다. 사실 권선징악은 책과 이야기의 바깥에서는 힘을 잃기 십상이다.


  “... 내일이면 나도 예순여섯 살이 되고 평생 소설을 써왔지만 어떤 곳에서도 단 한 글자도 출판해주지 않았어요. 〈파리 리뷰〉에 내 소설이 실릴 수만 있다면 내 왼손 새끼손가락을 줄 거예요... 새끼손가락 하나에 〈파리 리뷰〉, 고환 두 개에 〈트라이쿼터리〉(요즘으로 치면 〈하퍼스〉 정도 될 것이다), 왼손에 〈에스콰이어〉, 귀 한 쌍에 〈뉴요커〉를 얻고 나면, 그 후 성공이 보장된다... 더블데이 출판사에서 단편집을 내기 위해 왼쪽 팔을 내놓았고, 크노프 출판사에서 장편소설을 출간하기 위해 왼발을 내놓았다.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까지 받으려면 작가의 신체 부위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리한 슈퍼에이전트 래칫은 그의 눈을 걸고 노벨상을 따내기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이제 곪아가는 몸덩이가 되어버린 작가는 바구니에 꾸러미로 담겨 불멸의 화신이 되어 최고의 문학상을 받으러 스톡홀름으로 날아간다.” (pp.451~452, 조이 윌리엄스, 댈러스 위브의 〈스톡홀름행 야간비행〉를 선정하고 나서 덧붙인 말 중)


  스티븐 밀하우저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문장이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고, 댈러스 위브의 〈스톡홀름행 야간비행〉은 충격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섬뜩하여 기억에 남는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책의 제목은 데니스 존스의 〈하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실린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전개되는 모든 일을 감지하는 소설 속 주인공에 빗댄 문장인데, 책에 실린 소설을 읽는 독자의 정반대편이라고 할만 하다. 책에 실린 ‘모든 빗방울’들은 충분히 외외성을 간직하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레이먼드 카버 외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 다른 / 454쪽 / 20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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