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10시간전

카르스텐 두세 《명상 살인》

범죄 조직을 장악하고 아이 유치원 문제까지 해결하는 변호사의...

*2021년 12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랜만에 읽는 독일 소설이다. 가장 최근은 2018년에 읽은 예니 에르펜베크의 《모든 저녁이 저물 때》였다. 그런가 하면 세계사에서 출판한 책은 2012년 12월에 읽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이 마지막인데, 리뷰를 살펴보니 그즈음 대선 후보자들의 TV 토론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보여준 박근혜의 면모에 고개를 도리도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뿐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끝내려고 할수록 당신은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를 멀티태스킹이라 한다. 당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일부터 완수하라. 이것이 싱글태스킹이다. 첫 번째 일이 끝난 후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을 하라. 당신은 일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압박감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p.111, 요쉬카 브라이트너, 『추월 차선에서 감속하기 – 명상의 매력』)


  그로부터 9년 여가 흘러 그 박근혜는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는데, 박근혜를 배출한 당의 새로운 대선후보는 여자 박근혜라고 불려 손색이 없는 자이다. 하루에 하나씩 망언을 일삼다가 한동안은 아예 입을 닫아버리더니 그 다음에는 보고 읽는 것 이외에는 말하지 않는 전략을 사용했다. 수첩 공주를 이은 프롬프터 왕자라고 불러야 할지. 그렇지만 박근혜가 그랬듯 이 자도 이번 대선의 유력한 후보다.


  “바다에서 가라앉아 익사하지 않으려면 시간의 섬을 창조해야 한다. 이곳은 당신이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보호된 공간이다. 여기에는 ‘나는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만 있다. 시간의 섬은 장소가 아닌 기간이다. 1분이 될 수도 주말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그것은 오직 당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당신이 정의 내리고 지켜내야 할 기간이다. 좌초한 배에서 탈출해 섬을 찾아낸 사람처럼 이곳에서 휴식과 먹을거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언제 시간의 섬을 찾을지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다. 이곳을 떠나는 시기도 당신에게 달렸다. 당신은 모든 침입자로부터 시간의 섬을 방어한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만을 위한 시간의 섬이 있음을 알고 있다.” (p.38, 요쉬카 브라이트너, 『추월 차선에서 감속하기 – 명상의 매력』)


  유력한 후보여서 TV를 켜면 이 자와 이 자를 대변하는 자들을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명상이 필요하다. 되도록 뉴스의 앞 부분을 보지 않는다거나 뉴스를 피해 예능물을 보기로 하는데, 엊그제는 옥탑방 어쩌고에 이 자가 나와서 채널을 넘겼다. 어찌나 놀랐던지. 그래서 대선 기간동안에는 아예 OTT 서비스만 이용할까 심각하게 고려 중인데, 최근에는 <더 만달로리안>에 나오는 쉰 살의 어린 요다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내가 살인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인정하면 된다. 양심의 소리에 순응했다. 그 소리를 오랜 시간 경청했다. 현재까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명상의 언어로 말하면 나쁜 일을 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단념함으로써 좋은 것을 성취했다. 나와 아이를 위해 더 나쁜 일을 막아냈다. 도덕적으로 내가 한 일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한다.“ (p.130)


  물론 《명상 살인》과 같은 읽을거리도 앞으로 남은 구십여 일을 버티는데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바보 같은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지배 당하던 머리 좋은 변호사가 아내의 조언으로 만난 상담사 혹은 명상 코치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다보니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그런데 이 살인을 통해 많은 것이 저절로 해결되고, 그에 따른 부차적 문제 또한 어찌어찌 해결하여 모두에게 이로운 국면이 된다는 이런 소설...


  “... 오늘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일에서 해방된 날이었다. 나는 고소득 정규직을 프리랜서 아빠의 자유와 바꿨다. 행복한 한스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 공무집행방해죄의 공범으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그리고 내 딸과 나에 대한 살해 협박, 권력 다툼에 휘말려 있고, 보리스를 포함해 최소한 두 명의 사이코패스를 상대 중이다. 게다가 집 앞에서 전 직장에서 사용하던 업무용 차량이 폭발했다. 하지만 행복한 한스도 말을 계속 소유하지 않고 다른 것과 바꿨다. 그 순간은 한스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나도 그래야 했다.” (p.253)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너무너무 재미있고 싶어서 읽었지만 너무너무 재미있지는 않았다. 각 챕터의 맨앞에 명상 코치가 쓴 책의 일부를 싣고, 그 실린 코칭에 따라 살인을 비롯한 여타의 솔루션을 갖게 된다는 설정이 꽤 흥미로웠고, 너무 재미있는 정도랄까. 범죄 조직의 보스에 휘둘리던 변호사가 보스가 없는 상태에서 그 조직을 장악하고 상대 조직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형사들의 추적은 무위로 돌리며, 심지어 자신의 아이의 유치원 문제까지 해결하는데 재미있지 않기가 힘들다.



카르스텐 두세 Karsten Dusse / 박제헌 역 / 명상 살인 (Achtsam Morden) / 세계사 / 411쪽 / 2021 (2019)

매거진의 이전글 레이먼드 카버 외《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