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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7시간전

앨런 홀링허스트 《이방인의 아이》

900여 페이지, 세 번쯤의 세대를 거치고 나서, 새롭게...

  어느 날 ‘투 에이커스’에 세실 밸런스가 방문한다. 세실은 이미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이이고 이 집의 둘째인 조지의 친구이기도 하다. 아직 십대인 다프네는 세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조지 또한 세실과 자신의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색다른 경험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짧은 방문이 끝나고 떠나면서 세실은 ‘투 에이커스’라는 시를 그들에게 남긴다. 다프네와 조지에게...


  “나무 아래로 땅거미가 더욱 짙게 깔렸고, 자그마한 숲이 이상하리만치 거대해 보였다. 세실의 어조는 조바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두 남자는 계속 꾸물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자작나무 사이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안 얇은 옷자락과 조지가 쓴 밀짚모자 가장자리 위로 희미한 빛이 내려앉았지만 어떤 표정인지는 자세히 알아보기 힘들었다. 조지는 멈춰 서서 발로 무언가를 쿡쿡 찔러 댔고, 그보다 키가 큰 세실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 조지 옆에 가까이 서 있었다. 다프네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고, 잠시 후 두 사람이 다프네의 인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5) 


  어린 다프네는 이제 더들리의 아내가 되어 있다. 더들리는 세실 밸런스의 형이고, 세실은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고 사망했다. ‘투 에이커스’에서 3000 에이커의 ‘콜리 저택’으로 온 다프네에게는 이미 두 명의 자식, 코리나와 윌프리드가 있다. 죽은 세실의 전기를 쓰기 위해 서배스천 스토크스가 ‘콜리 저택’을 방문하는 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다프네는 이제 ‘콜리 저택’을 떠날 결심을 한다. 


  “... 「투 에이커스」에 얽힌 뒷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이 숙덕거릴 때마다 다프네는 한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소녀였는지에 동의한다고 계속 떠들어야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조지로부터 다른 사람들도 그 시를 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실이 「투 에이커스」를 솜씨 좋게 다듬어서 「뉴 넘버스」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표한 것이다. 그러다가 세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뒤, 처칠이 그 시의 일부를 인용해서 《타임스》에 기고하였다. 그 무렵 다프네는 서배스천 스토크스에게 그 유명한 사인첩을 잠시 빌려주었다...” (p.291)


  다프네는 두 번째 남편 레벨 랄프에 이어 세 번째 남편 바실 제이콥스를 만났다. 다프네의 딸인 코리나에게는 존과 줄리언이라는 아이들이 있고 그녀의 남편 키핑은 은행의 지점장이다.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폴은 이들 집안 사람들과 몇 번의 만남을 갖게 되고, 이제는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콜리 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그때 폴은 피터 로와 함께 였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키스를 한다. 


  “... 폴은 더들리 밸런스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연신 느긋하게 미소 지으면서도 다소 초조해하던 노부인에게 세실 밸런스가 바친 시구절만큼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외울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제이콥스 부인은 자기가 세실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왠지 가볍게 치부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투 에이커스」라는 작품은 특별히 제이콥스 부인에게 헌정된 시였다...” (p.438)


  이제 다프네는 여든 셋이 되었다. 폴은 지금 세실 밸런스와 관련된 새로운 글을 쓰고 있다. 폴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세실 밸런스를 바라볼 작정을 하고 있다. 이제 세실 밸런스를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다프네가 마지막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폴에게 속시원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폴은 결국 세실 밸런스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다.


  “... 처음 들이켠 진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다프네에게 물어보려고 마음먹었던 모든 질문이 한꺼번에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름 아닌 그동안 들었던 다프네와 그 가족을 향한 수많은 의혹과 소문과 비방 들이었다. 이를테면 다프네는 조지와 세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나 할까? 윌프리드는 자신의 누이가 사실은 세실의 딸일 수도 있다는 추문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폴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인생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는 단순히 과거만을 다루지 않으며, 자신이 취급하는 비밀이 앞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다양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다가왔다...” (p.769)


  1부 ‘투 에이커스’, 2부 ‘레벨’, 3부 ‘침착하라, 소년들이여, 침착하라!’, 4부 ‘시인의 비밀’을 거치면 5부 ‘오랜 동반자’에 이르게 된다. 폴은 《영국의 분개》라는 책을 썼고, 그는 지금 피터 로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있다. 9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동안, 세 번쯤의 세대를 거치는 동안 소설에 등장했던 인물들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이다. 그리고 장례식장에는 서적상 롭이 있으며, 롭은 이제 곧 세실 밸런스와 관련된 중요한 편지 자료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새롭게...



앨런 홀링허스트 Alan Hollinghurst / 정윤희 역 / 이방인의 아이 (The Stranger’s Child) / 민음사 / 879쪽 / 20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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