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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8시간전

세라 워터스 《끌림》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갖는 다양한 층위의 욕망들 사이사이로...

  187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끌림》은 세라 워터스가 쓴 빅토리아 3부작 중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 소설 《티핑 더 벨벳》에 비해 이런저런 소설적 기교가 사용되고 있다. 소설은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두 명의 주인공이 번갈아 서술하는 이야기는 시간도 배경도 다르다. 다양한 미스터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의외의 인물이 일으키는 반전의 묘미도 굉장하다. 


  “내 생각에, 아빠라면 밀뱅크의 바깥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듯하다. 감옥 내부를 구경하려는 방문객이라면 꼭 통과해야만 하는 지점부터 말이다. 그러니 나도 그곳부터 내 기록을 시작하기로 하자. 감옥 수위가 나를 맞이하더니 커다란 명부에 내 이름을 표시한다. 이제 교도관이 나를 데리고 좁은 아치를 지나고, 감옥 내부로 내가 막 들어서려는 순간······.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나는 치마가 신경 쓰여 잠시 걸음을 멈춘다. 치마는 소박하지만 폭이 넓고, 가두리에 벽돌 조각인지 돌출식 단철 장식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인지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아빠라면 스커트의 세부 묘사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바닥을 쓸다시피 하는 치마 끝에서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밀뱅크의 오각형 건물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가까이 있는 데다가 너무나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는 바람에 아주 무시무시해 보인다. 나는 오각형 건물들을 쳐다보며 심장이 세차게 뛰는 걸 느끼고, 겁을 먹는다.” (p.18)


  소설의 주인공인 마거릿은 첼시의 부잣집에 사는 숙녀이다. 신여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죽은 이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헬렌은 지금은 오빠인 스티븐의 아내가 되었다. 여동생인 프리실라는 곧 결혼을 할 것이고 이탈리아로 신혼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아버지가 죽기 전 마거릿과 헬렌이 함께 여행을 할 작정이었던 나라이다. 이제 마거릿은 어머니의 권유로 밀뱅크 감옥을 방문한다.


  “나는 도스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첼시의 체이니 워크에 산다고 했다. 결혼한 남동생과 곧 결혼할 여동생이 있고,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밤에 잠을 설치며 오랜 시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니면 창밖으로 강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본다고 했다. 이윽고 나는 생각에 잠긴 척했다.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 정도면 나에 대해 모두 다 안 듯해요. 특별히 더 말할 게······.」” (p.75)


  숙녀로서 모범을 모여 감옥에 갇힌 여죄수들의 교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마거릿에게 주어진 감옥 방문 미션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거릿은 신비한 여인 셀리나를 만나게 된다. 셀리나는 아직 십대인 아름다운 소녀이며, 동시에 영매이다. 셀리나는 영혼을 불러내는 강신술을 하는 중에 한 부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 죄로 감옥에 갇혔다. 마거릿은 셀리나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이윽고 끌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똑똑한 걸 원치 않는다. 적어도 여자들에게서는 원치 않는다. 「여자들은 똑같이 행동하도록 교육받고 자라죠. 그게 여자들의 기능이에요. 저 같은 여자들만이 사회 체계를 엇나가게 하고 흔들고······.」 

그러자 셀리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에 묶여> 있는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상을 벗어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우리가 변화하기 전에는 결코 그럴 수 없노라고 했다. 그리고 남녀에 대해서는, 우선 그런 구분부터 없애야 한단다.” (p.313)


  결정적으로 셀리나를 향하여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이르게 된 것은 감옥의 그녀가 저택의 그녀 마거릿의 물건을 없애거나 물건을 전달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 다음부터이다. 마거릿은 이제 셀리나를 통해 죽은 아버지를 느끼고, 헬렌으로부터 버림받은 성적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고, 비로소 완전한 형태의 사랑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부여받게 된다. 감옥 바깥의 마거릿은 감옥 안에 있는 셀리나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둘이 누웠던 침대로 가서 시트를 젖히고 흔적과 얼룩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선반에 있는 대야로 갔다. 안에 탁한 물이 조금 남았기에 손가락으로 저어보니 검은 체모와 짙은 황금색 체모가 하나씩 보였다. 이윽고 나는 대야를 바닥에 던졌고, 대야는 산산이 깨졌고 물이 마루 널을 적셨다... 시트를 찢었다. 찢어진 천은, 뭐랄까, 마치 약물처럼 나를 취하게 했다. 나는 찢고 또 찢었으며, 마침내 시트는 넝마가 되었고, 내 두 손은 욱신겨렸다. 그래서 솔기를 물고 이로 찢었다. 그리고 넝마 쪼가리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마침내 나는 헐떡이며 창문으로 가서 뺨을 유리에 대고 덜덜 떨며 창틀을 움켜잡았다. 내 앞에는 런던이 완벽하게 하얀 모습으로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눈은 여전히 내렸으며 하늘은 눈을 임신한 듯이 보였다. 템스강이 보였고, 배터시의 나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왼쪽 저편, 너무나 멀기에 아래층 내 방 창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기에 밀뱅크의 뭉툭한 탑 꼭대기가 보였다.” (p.511)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철저히 기만당한 셀리나와 셀리나를 완벽하게 속인 마거릿의, 혹은 마거릿을 지배하는 또 다른 존재의 출현으로 채워지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조금은 의심스러운 짐작을 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놀랍다. 동성애 소설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갖는 다양한 층위의 욕망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마냥 대중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재미있다.



세라 워터스 Sarah Waters / 최용준 역 / 끌림 (Affinity) / 열린책들 / 539쪽 / 2012, 202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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