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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이은혜 《읽는 직업》

독자와는 따로, 또 같은 위치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있는...

  저자 이은혜는 인문 서적을 주로 출판하는 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자이다. 뒤져보니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는 왕웨이련의 《책물고기》를 읽은 것이 전부이다. 중국 현대 소설을 소개하는 ‘묘보설림’(이야기의 숲을 산보하는 고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내가 읽은 것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권이었는데, 지금은 열네 번째 권까지 출간되었다. 


  “편집자는 전문적인 학술 세계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축적한 연구를 흡수하려고 끊임없이 기웃거리는 존재다. 글을 읽고, 그에 관해 저자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자기 발전을 이루는 가장 빠르고 핵심적인 방법이다. 또 편집자는 메인 스트림으로 직진해서 어떤 주제를 섭렵하기 좋은 직업이다.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선명히 구분하지 않고 둘의 경계를 지웠을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그들의 글과 삶에서 반은 영향이 내 사적 영역에까지 스며들도록 나를 활짝 열어두었다.” (p.36)


  사실 글항아리는 제목만 보아도 소수의 사람들에게 읽히고 말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잘도 출간하는 출판사이다. 그러면서도 용케 유지를 하고, 유지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책을 내고 있다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게 되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책에 는 ‘겨우 천 권만 팔리는 책들에 관하여’라는 챕터가 있는데 글항아리의 궤적이 거기에 겹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는 저자가 더 많은 듯한데, 그건 아마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인터넷 매체들이 단기적인 이익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나 편집자는 그저 상인의 이익을 좇는 부류가 아니다. 저자가 우리 삶을 사회적 기능으로 축소된 뼈다귀가 아닌 살점이 풍부한 형태로 빚어주길 원한다. 즉 우리는 현실을 앙상하게 느끼고 있지만 거기서 더 풍부한 의미를 발견한 수 있노라고 낙관의 기운을 불어넣는 저자를 기대한다.” (p.54)


  그러면서 대체 이런 출판사는 어떻게 유지가 되는 것일까, 궁금증을 갖게 되기도 했다. 책에서 잠시 언급된 것도 같은데, 다섯 권 중 한 권 정도가 힘을 내주어서 조금 덜 팔린 나머지 책들이 가능하도록 한다, 라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글항아리에서 출간되었다.) 나는 어쨌든 글항아리나 동아시아, 소명출판과 같은 출판사의 책들을 응원한다. 그만큼 유니크하진 않지만 출판사 어크로스나 알마에서 나오는 책들 또한 나는 내심 응원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편집자는 작가의 가난을 안타까워할 때가 있을지언정 그들을 동정할 수는 없다. 작가는 우리가 동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작품에서 타인들을 점차 깊이 만나고 그러면서 더 확장된 세계로 진입한다. 편집자나 독자는 알 수 없는 그러한 세계로. 그런 작가의 손에서 진귀한 작품들이 나오곤 한다. 몇 번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데서 끝까지 가봤을 때 남들이 알지도 못하는 하나의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p.60)


  십오 년이라는 시간 편집자로 살아온 저자의 글은 정갈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간 저자가 편집자의 입장에서 읽고 가지를 쳐낸 원고들을, 저자가 이 책을 만들기 위한 원고를 쓰는 동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편집자가 아니라 적은 수의 독자들에 가닿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짐작할 수 있음에도 어찌할 수 없이 출간할 수밖에 없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저자에게 바치는 경외도 자주 비쳐진다.


  “빽빽한 삶의 밀도에서 한발 떨어져 나오고 싶을 때 엄마를 만나거나 친구 J를 만나 ‘한숨 돌린다’. 그들과 함께할 때 쓰는 언어는 평소와 다르다. 성긴 말들로 신념이나 의무를 묽게 희석시키며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것은 예외적인 삶이고, 거의 매일 잡목 하나 들어서지 못할 만큼 빽빽한 저자들의 숲속에 서 있는 것이 편집자의 삶이다. 침엽수림 같은 그곳의 밀도는 대단히 높아서 ‘아름다움’ 그 자체라 할 만하다.” (p.77)


  독자와는 따로, 또 같은 위치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있는 편집자를 한 권의 책으로 잘 들여다보았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책을 읽으면 삶이 나아질까’라고 묻고 ‘꽤 그럴 것이다’라고 스스로 답한다. 하지만 동시에 각주를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삶에 윤기가 좀 흐르지만 자기 자신이 꽤 나아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기적인 자아는 잘 변하지 않아 책을 읽어도 제자리걸음인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고, 그것은 꽤 서럽다.”라고. 짐작 가능한 서러움이다. 



이은혜 / 읽는 직업 / 마음산책 / 232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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