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미디어,기업 대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과학 그리고 가족...
*2022년 1월 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엄마의 팔십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님 집에 모였다. 미리 주문한 음식들로 간단히 상을 차려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중에 <돈 룩 업>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를 보았느냐는 질문에 남동생이 보았다고 했다. 남동생의 아내는 동생이 넷플릭스에 등장하는 모든 영화를 볼 기세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나는 피트니스에 가려다 그만 두고 영화를 시청하기로 했다.
사실 며칠전 텔레비전에서 여야의 의원이 패널로 나온 시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이 영화를 거론했다. 대충 영화 속의 정치인은 혜성이 지구를 향하여 날아오는 순간에도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먼저 생각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이크가 야당의 패널, 김은혜 의원에게 넘어갔는데 곧바로 상대방을 향한 비판을 이어가서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그러니까 영화를 본 사회자는 모든 사건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며 제발 그러지 말고 좀 건설적으로 토론을 이어가자는 제스처를 보였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며, 하필이면 사회자의 말을 넘겨받은 패널이 야당인 국민의 힘 의원이어서 더욱 크게 한숨을 내쉰 것 같다. 게다가 김은혜 의원은 언론인 출신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는 브라(케이트 블란쳇 분)와 잭이라는 방송인이 사회자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이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혜성을 최초로 발견한 박사 과정 학생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와 그의 지도 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대통령에게 까이고 나서 (그러니까 혜성 충돌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위기가 중요하여서...) 직접적으로 그 사실을 대중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프로그램에서도 사정없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두 사람에 앞서 출연한 뮤지션이 방송 중 프러포즈를 받아버린 것이다. 남자 사회자는 과학자의 지구 멸망에 대한 경고 따위는 재치있는 말잔치로 넘겨 받고, 여자 사회자는 민디 박사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나사의 낙하산 관리자의 입을 통해 위험은 침소봉대된 것으로 치부되고 두 사람은 낙담한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몇 번의 부침을 겪지만 결국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두 사람을 외면했던 대통령은 또 다른 정치적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 불러들이지만 이번에는 거물급 후원자의 돈벌이를 위하여 마지막 순간 방향을 틀어버린다. 마지막 순간 디비아스키와 민디 박사는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지구를 떠난 정치인과 그 후원자는 몇만 년 후 낯선 외계 행성에서 외계 동물에게 잡아 먹힌다.
대충 줄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는 무능한 행정부 수반을 비롯한 정치인, 새로운 시대 새로운 스타일의 글로벌기업 총수, 미디어와 그 종사자, 낙하산으로 꽂아 놓은 행정기관의 꼭두각시 수장 등을 모두 신랄하게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이다. 등장하는 대통령은 (성별이 바뀐) 트럼프와 그 자식들을 연상시키고, 기업 총수는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우리가 무턱대고 믿지 말아야 할 많은 것들이 이 안에 있다. 물론 결국 우리가 믿어야 할 것들, 그러니까 변하지 않는 과학적 사실과 가족도 영화 안에 끝까지 남아 있기는 하다.
돈 룩 업 (Don’t Look Up) / 아담 맥케이 감독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출연 / 139분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