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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3. 2024

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적당한 의지로 시작하지만 어영부영 끊이지 않고 유지하다보면...

  커피를 단물 먹듯이 하였다. 아침 일과를 시작하면서 단 캔 커피를 대자로 하나 마시고, 오후 일과로 접어들 때 캐러멜 마키아또나 연유 라떼를 하나 마시고, 저녁 때는 달리기를 하고는 딸기 라떼나 플레인 요거트 스무디를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달렸으니 이 정도는 마실 자격이 있어 이러면서... 혹여 프렌차이즈 까페가 문을 닫을까, 마지막 1 킬로미터는 전력 질주를 할 때도 있다.


  “이것은 내 일 년 중 가장 의미 있는 일탈이다. 나는 고기를 먹는 일을 일탈의 영역으로 둔 것을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탈은 짜릿하고, 즐겁고, 그러면서도 일상을 결코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탈의 순간 꼭 조금은 시시해진다. 원래의 단조로운 내 삶이 충분히 좋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이다. 나는 내 생일날 고기를 맛있게, 그리고 얼마간 시시하게 먹으면서 다시 고기를 먹지 않는 삶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p.186~187)


  지난 주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 운동을 시작했다. 먹는 것도 조절하기로 했다. 아침 일과를 수행하는 동안 물을 마시고,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들어오(려 노력하)고 저녁 운동이 끝나면 제로 슈가 콜라를 한 캔 얼음과 함께 마신다. 후배가 이런 내게 크리스피 도넛으로 공격을 가했는데 잘 참아냈다. 사실은 크게 유혹적이지 않았다. 나는 금연도 쉽게 하고, 운동의 시작도 쉽게 하고, 단 것을 참는 것도 쉽게 하는 것 같다고, 함께 일하는 L에게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옛날에 내가 열심히 파하던 종류의 사람이 되어 있다. 꾸준하게 운동하고, 영양제도 먹고, 인사도 미국 사람처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고흐만큼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너무나 건강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펄펄하게 살아 있다. 우리 중 아무도 그의 죽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p.22)


  이것으로 요조의 산문집을 세 권째 읽게 되었다. 뉴스를 보지 않아 정신이 맑아지고 장이 깨끗해지고 (아 잠깐 이건 그러니까) 눈이 밝아진 상태에서 읽어 그런 것인지 읽는 동안 아주 좋은 마음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피식피식 하는 웃음도 새어 나오고, 어떤 장면들은 정말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기도 했다. 억지로 감상을 끌어내려 하거나 되지 않을 논리를 앞세우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매일매일 한국말을 주고받는 것은 자연스럽고, 유용하고, 불가피하면서도 너무 자주 지저분하고, 징그럽고,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다 우연히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눈빛으로, 손짓으로, 온몸을 동원해 더듬거리며 ‘좋아한다, ’날씨가 좋다‘, ’맛있다‘, ’기쁘다‘ 같은 정말 필요한 말만을 주고받고 있으면 내 언어의 방바닥을 먼지 없이 물걸레질한 듯한 기분이 든다...” (p.151)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삶이 보기에 좋기도 하였고, 은연 중에 따라 하고 싶기도 하였으며, 어느 부분은 내가 추구하는 태도와 조심스럽게 겹쳐 보이기도 하였다. 더욱 좋은 것은 자신이 균형을 잡지 못하여 기우뚱 하는 것 까지도 숨기지 않고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어요, 라고 덤덤히 말한다.


  “제주에서 집 밖의 재미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상구, 순디, 미케, 삿다. 대문을 열면 주로 보는 자유로운 애들이다. 상구가 개고, 나머지는 고양이다. 상구는 고양이 사료를 엄청 좋아해서 이마트에서 산 대용량 싸구려 고양이 사료 하나를 자기가 다 먹었다. 상구는 검은 개라서 밤늦게 귀가할 때 그 애가 나타나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상구는 더듬거리듯이 쓰다듬어주었던 때가 많다. 가끔은 자다가도 바깥에서 푸드덕거리는 소리로 상구가 와 있다는 것을 안다. 정말 재미있다.” (p.149)


  그러니 자꾸 책에서 펼쳐지는 삶을,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모두가 마음 편하게 실패할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강한 의지가 그만큼 강한 실패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적당한 의지로 시작하지만 어영부영 끊이지 않고 유지하다보면 어느 새 작은 성취에 다가설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주와 비교해 내 몸무게는, 그러니까, 아직 제자리걸음이지만...



요조 /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 마음산책 / 235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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