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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9시간전

강희영 《최단경로》

삶의 여러 교차로를 포함하면서 우회하지 않고 지나가는...

  대전에 있는 문화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국민학교였고, 2학년에서 4학년까지였을 것이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돌멩이 하나를 골라 발로 차면서 동행했다. 육교가 하나 있었는데 돌멩이를 차면서 갈 수 없어 한동안 이용하지 못했다. 대신 우회하여 골목을 지나 기찻길 건널목을 통과하는 경로를 택하고는 했다. 돌멩이를 시선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땅바닥만 보다가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비껴갔던 기억이 난다. 근처에 서대전역이 있었다.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진혁의 바지 앞섶을 긁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풀었다. 애영은 진혁을 내버려두었고, 그는 눈을 감고 오늘 본 교실 창밖의 풍경을 떠올렸다. 응달에 심긴 목련은 늘어놓은 흰 장갑처럼 맥아리가 없었다. 개중에서도 유독 눈에 밟히는, 벌레를 먹었는지 누렇게 시든 꽃망울이 하나 있었다. 그대로 삭아버릴 줄 알았는데 기어코 싹눈을 찢고 꾸역꾸역 꽃잎을 밀어낸 것이었다. 꼴사나웠다...” (p.49)


  책을 읽는데 갑작스레 어린 시절의 이미지 한 칸이 떠올랐다. 소설에는 데이크스트라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나온다. 출발지에서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짧은 경로를 탐색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는 저때 최단경로를 두고 부러 우회하는 경로를 택했다. 그 우회경로를 위해 집에서 보다 일찍 출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출발할 때 나와 함께 였던 돌멩이로 학교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날은 드물었다.


  “진혁 앞으로 온 편지의 내용은 짧고 어색했다. 오길 바람. 매주 금요일 밤 비행기가 있음. 토요일 아침 도착함. 당일 저녁 비행기를 탈 것. 일요일 오후에 귀국할 것임. 아래 메일로 온라인 티켓을 포워딩해주길 바람. 공항에 나가 있겠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p.90)


  소설의 배경은 네델란드인데 혜서는 서울에서 미리 그곳을 눈으로 탐색한다. 혜서는 직장의 전임자인 진혁과 검색 기록을 공유하였다. 혜서는 진혁이 검색한 곳을 눈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스트리트 뷰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혜서는 서울의 직장에 있는 모니터 화면 안에서 네델란드에 있는 거리에서 길에 놓인 곰 인형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 날 서울을 떠나 네델란드로 향한다. 


  “이반의 담당 교수는 열일곱 살에 떠올린 멜로디 한 소절을 변주하는 것으로 제 모든 음악적 커리어를 쌓았다. 마이레는 그가, 데뷔작이 엄청나게 히트하는 바람에 이를 연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일본의 한 만화가와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들은 노랫말이 하루종일 입가를 성가시게 하듯 십대부터 따라온 그 소리는 그의 삶 주변을 날벌레처럼 맴돌았다. 멜로디는 늙지도 닳지도 않는다. 그의 노화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pp.95~96)


  네델란드에는 애영이 있다. 진혁은 이미 그곳을 다녀갔고 더 이상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혜서는 애영을 만난다. 곰 인형이 그곳에 놓이게 된 연유를 알게 되고, 애영이 입주해 있는 곳의 다른 이들도 만난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애영의 딸과 애영의 엄마이고, 진혁은 사고를 당한 딸의 아버지이다. 애달픈 이야기인데 그렇게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 신파가 되도록 놔두지 않는다. 


  “... 사용자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감지되지 않는다면 네트워크에 남아 있는 노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정지하고 있는가. 정지라는 동작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노드는 늙지도 낡지도 않는다. 한번 생성된 계정은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영원히 대기할 수도 있다. 문제는, 사용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움직이기 마련이다. 혹은 죽거나.” (pp.160~161)


  해외에 B2C로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간혹 구글의 지도 검색을 이용한다. 구매자가 적은 주소가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나 구매자가 제공한 우편번호 등이 오류로 경고될 때 등이다. 동남아시아에 속한 국가나 중동의 나라 혹은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인 경우가 많다. 한 번은 그렇게 검색된 주소의 이미지로 단층의 작은 집이 등장했다. 낮은 쇠창살의 담장으로 둘러쳐진 낡은 집이었는데 한참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강희영 / 최단경로 / 문학동네 / 187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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