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빈 《울타리의 노래》
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내가 길게 혀를 내미는 것은 균형을 잡기 위해서이다. 나는 말의 허리를 붙잡고 말의 등에 고개를 파묻는다. 속도를 이겨내야 하는 것은 말이고 나는 말의 속도에 편승할 뿐이다. 나와 말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그 틈으로 시간이 훌쩍 흘러갈까봐 초조할 따름이다. 시간은 온갖 것들의 조바심을 거두어 흘러가는 바람이다.
“새싹은 새싹으로 자라기 위해 / 끝도 없이 서로를 타 오르지 / 나무들은 입안 가득 혀를 빼물지 / 혀를 삼킨 우리의 식성을 위해 / 아낌없이 침묵하자고 // 나는 틈만 나면 잠을 모으지 / 뿔이 악몽을 한 점에 집중할 때까지 / 몸의 내륙이 쩍쩍 갈라질 때까지 / 기린, 우리 벼락 맞는 나무의 / 가장 위태로운 가지 같아” - <기린의 문> 중
시를 읽는 것은 주문을 외는 일에 다름없다. 주문은 모으고 있는 손바닥을 기둥으로 삼아 하늘을 향한다. 우리는 노래하는 것처럼 말하고 말하는 것처럼 노래한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특이한 모양으로 얽힐 때 잠시 하늘을 향한 문이 열린다. 어떤 주문은 침묵보다 못하다. 결국에는 힘이 빠지고 계단을 따라 터벅터벅 지상으로 내려오고 만다. 주문은 탐욕스럽고 침묵이라는 문지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지금 축축한 주머니 속, 구겨진 손바닥을 꺼내보면 반짝 돌아보며 사라지는 골목 저편의 미소들 흑백의 가로등 아래, 곧 떨어져 나간 탯줄처럼 시퍼렇게 질린 입술에서 나는 나를 도려낸 절망이 제 허기를 비추는 흰소리를 듣는다, 벗어날 수 없는 길은 언제나 같은 입술 다른 목소리들로 말을 걸어오지 우리는 남들이 되비추는 대로 너 자신이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이제 너는 빈 열쇠고리에 불과해 // 나는 누굴 열고 들어선 걸까? 지금 내 뒤의 너는 너에게만 없는데, 눈 감아도 여전히 같은 눈빛의 궤도를 돌고 있다 고개를 들면” - <두 겹의 창> 중
밤은 하늘에서 사라진 순간들이 지상에서 재결합하는 시간이다. 하늘을 향한 출입구에서 뒤돌아서야 했던 입술들이 서로를 위로해야 하는 시간이다. 침묵이라는 문지기에 대항하는 말의 연맹이 긴장감 속에서 고개를 드는 시간이며, 글의 한쪽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넓게 펼쳐보는 시간이다. 특색 없는 침묵을 향한 총공세의 묘안을 짜내야 하는 시간이고, 시간을 뛰어넘어 등장하는 실러캔스라도 채집해야 하는 시간이다.
“밤은 뜨겁고 별들은 녹아내리고 내가 짓밟아온 얼굴들은 쓸려 가고 파도는, 내 발바닥은 밤보다 넓어지고 높아지고 다시 푸른 얼굴로 발광하며 밀어닥치고 나는, 검붉은 고독의 껍질을 도둑맞은 나의 사랑은 폐색이 짙다.” - <협상> 중
우리가 불가피하게 밤의 종족이 되면 조심스럽게 끌려가던 시간이 배설물처럼 쏟아낸 소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귀로 더듬어 따라 붙는 동안 우리의 다른 감각은 소용이 없어진다. 우리의 뒤를 어미 잃은 고양이가 따르고, 어미 잃은 고양이를 길 잃은 아이가 따르고, 길 잃은 아이의 바지춤을 어미 개가 물었다 놓았다 하며 따른다. 밤은 자신이 애초에 부여받은 속성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워지기를 반복하는 시간이다.
전조
고개를 들면 밤의 해바라기밭, 검은 씨앗들의 방언이 빼곡하다 머리카락처럼 살아 있는 뿌리는 그보다 월등한 시체를 향하지 밤이 오면, 우리는 더욱 현명해지리라 밤 아닌 것들과 함께
번뜩이던 창문에는 얼마간 다른 빛이 깃들어 자신이 헤쳐 지나온 건초지, 불길에 사로잡히는 울타리를 바라본다 하나, 둘······
메시지가 닿을 즈음이면 그곳에도 사막의 시인이 젖어들겠지요 이곳에는 별들이 많아요 그리고 암흑보다도 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씨앗보다는 흙을 기르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나는 무심하고 싶고 구분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호하고 싶고 그만 자라고 싶다. 나는 친숙을 바라지 않고 거부당하는 것에 관대하고 싶다. 나는 마주치고 싶지 않고 그게 무엇인가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 나는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것들을 차근차근 무너뜨리고 싶을 때도 있고, 당신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나는 사실 미동도 하고 싶지 않다.
이설빈 / 울타리의 노래 / 문학과지성사 / 176쪽 / 2019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