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하우게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하우게는 노르웨이 남서부 울빅(Ulvik) 마을에서 1908년 태어나 1994년까지 살았다. 그곳은 빙하에 의해 생긴 피오르 해안 지대로 천 명 정도가 살고 있다... 1928년 하우게는 원예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평생 정원사로 일한다. 매일 노동했으며 가장 좋은 시는 숲에서 쓰였다. 그는 북구의 차가운 조용함 속에서 한 손에 도끼를 든 채 시를 썼다. 그렇게 꿈꾸고 그렇게 존재를 열면서 당시 시의 코드에서 자유롭게 벗어났다." (pp.99~101, 임선기, <하우게에 대하여> 중)
두려움은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다. 간혹 두렵다, 가 간혹 두렵지 않다, 로 바뀌어간다. 자유를 향하여 엄살을 떤다. 나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꿈꾸었지만 실제의 삶은 두려움 가득한 채 도시에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사이에 작은 학교에 다녔는데 오랜 시간 거기만이 나의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학년에 세 개 반, 한 반에 육십 명 가까이 학생이 있었으니, 충분히 작은 학교도 아니었다.
추억
어릴 적
나의 추억은 바람
오늘
바람은 없다
전혀 없다
새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 건가
그동안 내가 거두어 가지고 있던 혹은 가두고 있던 것들을 살금살금 골라내서 놓아주고 싶은 밤이다. 나를 중심으로 앞뒤에 사소한 것들이 있어서 야속한 말들을 가려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아침 첫 등굣길 교실에서 발견된 올빼미의 첫 날갯짓 같은 특별함을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던 거기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실려 있는 시들은 평화롭고 부드럽고 사소하고 평범하다.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이제 내 마음이 말을 그친다
파도도 그치고
독수리들이 다시 날아간다
발톱이 피로 물든 채
아주 드물게 내게서 비롯된 상실이 있을 때만 잠시 시는 솟아난다. 나는 나의 행보가 횡보여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궁금하면 멈추어 서고 호기심이 채워진 다음에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충분하게 달아오른 다음에야 붉은 노을을 향해 걷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미 지나온 길의 행적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어느 날 막연하게 파르르 떨리는 느낌이 들었을 ,때 뒤를 돌아보면...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 바람 아니면 /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 바람과의 어울림도 /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 열매를 맺어 본 나무들은 /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중
한 해가 저물어가고 마음이 시들시들하다. 연말연시를 맞아 뉴스를 보지 않기로 하였다. 연말연시라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그 사이,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으로 채운 단순한 세계를 잠깐씩 구축해보기로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곧 한파가 시작되니 동파 방지를 위하여 세탁기의 운행을 연말연시에 멈추어 달라는 아랫집의 문자를 받았다. 나는 점심에 시간을 내어 한파 시작 직전 얼른 세탁기를 돌렸다.
"하우게는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작은 스푼으로 마치 간호사가 약을 주듯 먹여준다. 그는 옛날 방식으로 죽었다. 어떤 병증도 없었다. 단지 열흘 동안 먹지 않았다. 슬픔과 감사로 가득했던 장례식은 어린 하우게가 세례 받은 계곡 아래 성당에서 있었다. 말이 끄는 수레가 그의 몸을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작은 망아지가 어미 말과 관을 따라 내내 행복하게 뛰어갔다." (뒷날개, 로바트 블라이-시인)
위의 인용은 뒷날개에 실려 있는 (아마도 동료) 어느 시인의 말이다. ’단지 열흘 동안 먹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내가 염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실천한 시인이 경이롭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곡기를 끊어 자기가 죽은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시인이 부럽다. 선배가 올려놓은 안승준의 We will see someday 뮤직 비디오나 한 번 더 봐야겠다. ’언젠간 보겠지, 알아볼 수 있겠지, 모습이 달라도, 알아볼 수 있겠지.‘, 우리라고 부를 수 있었던 모든 것...
올리브 하우게 Olav H. Hauge / 임선기 역 /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 봄날의책 /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