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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9시간전

박희병《엄마의 마지막 말들》

구순 노모의 짧은 발화로부터 길어 올린 모호하지 않고 선명한...

*2021년 2월 1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명절의 풍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개개 집안의 이런저런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세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지난 추석에는 그저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수준이었으나 이번 설에는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강제되었다. 명절 전날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가, 명절날 아침에 다시 모여 아침을 식사하는 우리집 명절 루틴도 지킬 수가 없었다.


  “늙으나 젊으나 전다지 물건 덩어리다... 엄마는 4인 병실에 계셨는데, 엄마가 아흔으로 나이가 제일 많고 나머지는 40대, 50대, 80대 여성이었다. 엄마의 병상 대각선 방향의 병상에 계신 80대 여성은 인지장애와 욕창이 아주 심해 자나 깨나 고통스레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엄마의 병상 맞은편에는 40대 여성이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다. 이 두분은 물도 한모금 마시지 못했으며 링거만 맞고 있었는데, 눈이 풀려 있었고 입은 벌어져 있었다. 엄마는 깨어 있을 때면 늘 이 두분을 주시하셨다. 위의 말은 이런 상황에서 발화(發話)된 것이다. ‘전다지’는 ‘모두’의 사투리다. ‘물건 덩어리’는 ‘골칫덩어리’라는 뜻이다. 엄마 자신을 포함해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모두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주사만 맞고 있는 것을 슬퍼한 말이 아닐까 한다.” (pp.16~17)


  조심스럽게 엄마의 의중을 물었고 엄마는 흔쾌히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작정이라고 하였다. 명절날 아침에 우리 가족이 점심에 동생 가족이 방문하기로 하고 (조카가 함께 함으로써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어기게 되는데 암암리에 이런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하기로 하였다. 사실 동생 가족과 부모님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살고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의 집을 수시로 방문한다) 전날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생략하기로 했다. 


  “여기 새가 많이 날아온다.. 국립의료원 1인실에 계실 때인 1월 하순에 하신 말이다. 병실 창밖의 나무에 직박구리나 참새 같은 겨울새들이 날아와 앉곤 했다. 엄마는 새들이 찾아오는 것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p.96)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가족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지 못하니 명절날 식사는 간단한 떡국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었지만 엄마(와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굳이 만두를 빚으시고 몇몇 음식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엄마와 여동생이 각각 내게 전화를 했다. 여동생은 오빠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말리라 하였고,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엄마가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여동생에게 알리지 말라 하였다. 나는 엄마와 여동생에게 양쪽의 전화 내용을 알렸다.


  “젊은 사랑과 늙은 사랑을 가르는 세가지 기준은 욕망, 죽음의 그늘, 기억의 두께다. 젊은 사랑에는 욕망이 필수적이나 늙은 사랑에 욕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편 젊은 사랑에는 생의 유한성에 대한 통절한 자각 같은 것이 없으므로 죽음의 그늘이 의식되지 않지만, 늙은 사랑은 생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때문에 죽음의 그늘이 늘 드리워져 있다. 또한 젊은 사랑은 기억의 두께가 얇다. 기억의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사랑은 젊은 사랑에서 늙은 사랑으로옮겨 가게 된다. 기억의 두께는 꼭 시간의 두께에 비례하지만은 않으며 주관성을 띤다. 기억이 특히 강렬하게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기억의 두께는 두꺼워진다. 그리하여 늙은 사랑은 기억의 두께에 의해 지탱된다. 기억은 온갖 고락과 고통, 기쁨과 슬픔, 애증이 켜켜이 쌓여 형성되는 것이다... 나는 호스피스 병실의 엄마를 통해, 그리고 죽어가는 엄마를 대하는 아버지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pp.181~182)


  여덟시 반쯤 엄마에게 가서 식사를 하고 열시 반쯤 집으로 돌아왔다. 처가에 가기 위해서는 처남이 언제 집으로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했다. 시간을 조절하여 세시쯤 처가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빼는 처남과 마주쳤다. 처남이 주차했던 자리에 내 차를 세웠다. 처남과 아내가 반가워했고 나도 처남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올라가 장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좋은 우연이라며 웃으셨다.


  『집에 가자 어서 가자 이 손 잡고 어서 가자... 엄마의 이 말씀은 아버지의 일기에서 찾아낸 것이다. 일기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11시경 처가 양다리를 모아 세우고 양팔로침대를 잡더니 나를 보며 비상한 눈초리로 “집에 가자. 어서 가자. 이 손 잡고 어서 가자”라고 하며 팔에 힘을 주었다. 나는 당황하여 “여기가 병원인데 병이 나아야 가지. 조금만 더 참으시오”라고 달랬으나 막무가내로 계속하다가 힘이 빠졌는지 멍한 눈초리로 나를 보며 원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pp.236~237)


  변화된 상황에 무사히 대처하며 명절을 보냈다. 책을 읽는 동안 엄마를 떠올렸다. 사실 그러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기도 하다. 책을 쓴 작가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인데, 구순의 노모를 떠나보낼 때까지의 2년여 시간을 책으로 만들었다. 그는 말기암에 치매가 겹친 노모를 몇몇 병원을 옮겨 가며 호스피스 병실에 모셨다. 쓰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육십 넘은 아들이 구순 노모의 짧은 발화로부터 길어 올린 글들이 모호하지 않고 선명하다.



박희병 / 엄마의 마지막 말들 / 창비 / 401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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