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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4. 2024

정혜덕 《아무튼, 목욕탕》

깊은 산 속 작고 눈 쌓인 야외 온천탕은 한 번쯤 경험하고 싶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목욕탕은 온천지로 유명한 유성에 군인을 위해 개발되어 있는 어느 곳이다. 나무위키의 유성 온천 항목에는 대한민국 육군 소유의 계룡 스파텔이 소개되어 있는데, 어쩌면 그 전신이라 할 만한 곳이 내가 최초로 이용한 목욕탕이었을 확률이 높다. 아버지를 군인으로 둔 우리들은 군인 아파트에 살았는데, 주말에는 군인 아파트에서 저 온천으로 직행하는 버스가 운행되었다.


  “... 나에게 필요한 목욕탕은 따뜻하고 뜨뜻한 곳이지 뜨겁거나 차가운 곳은 아니라서 그런가 싶다. 끓어 넘치는 속을 달래고 싶어서, 칼바람 부는 세상을 피하고 싶어서 목욕탕에 오기에 앞으로도 열탕이나 냉탕으로 직행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런 시준우니 목욕탕 애호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면, 그래, 온탕 애호가쯤으로 해두자.” (p.20)


  목욕탕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 최초의 트라우마는 저 온천 목욕탕, 여탕의 한 가운데에서 마주친 같은 반 여학생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초라한 정도로만 가지고 있는 내게 그 장면만은 한동안 선명하였다. 지금은 5세만 넘어도 성별을 뛰어넘는 출입이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자식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고,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를 따라야 했다.


  “대중목욕탕을 비롯해 특급호텔 사우나와 24시간 찜질방을 포함한 목욕업 등록 업소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년 사이 3천 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나를 어른으로 성장시킨 목욕탕들의 굴뚝에서는 이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오래된 목욕탕은 카페나 쇼룸으로 바뀌기도 한다. 더는 찰랑거리는 물빛으로 반짝일 수 없는 목욕탕이라니, 문득 서글픔이 밀려온다...” (p.31)


  중학생 시절을 보낸 용인에도 군인 휴양소가 있었다. 근처의 군인 아파트에 살았던 나는 주말이면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가야 했다. 아버지는 목욕을 좋아했고, 동생은 어렸고, 나는 사춘기에 돌입할 즈음이었다. 탕에 들어가 그 연기를 꾹 참아내고는 했다, 아마도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목욕을 끝내고나면 아버지가 삼각커피우유를 사주었다. 분명 맛있었지만 그렇다고 목욕탕에 가는 일이 즐거워지지는 않았다. 


  “내 단골 목욕탕은 찜질방을 겸한 사우나지만, 나는 찜질과 사우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주로 목욕하고 때를 밀러 들른다. 집에서 가깝고 세신 능력이 우수한 목욕관리사님들이 있다는 것이 단골 목욕탕의 최고 장점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분위기다. 동네에 있으나 동네 목욕탕은 아닌 듯하다. 동네 목욕탕이라면 역시 ‘달 목욕 바구니’가 필수다. 친정 근처 동네 목욕탕은 탈의실 옷장 위에 달 목욕 손님의 목욕 바구니가 줄줄이 올려져 있다...” (p.109)


  한동안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와의 불화의 시작 즈음에 그 목욕탕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함께 간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명절에 본가를 찾으면 명절 전날 아버지는 엄마가 며느리들과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사우나에 가셨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오신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 아버지의 요청으로 몇 차례 따라갔던 듯하다.


  『제주 한림공동탕... 겉에서 보면 목욕탕인지 가정집인지 모를 외양을 하고 있다. “목욕합니다”라고 적힌 입간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주인이 깔끔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새로 지은 큰 목욕탕보다는 작고 오래된 목욕탕을 좋아한다. 이 목욕탕은 작고 오래되고 ‘깨끗한’ 목욕탕이라 버킷 리스트에 올릴 이유가 충분했다. 제주도 할망들과 함께 목욕하는 경험도 기대된다. 목욕을 마치면 ‘한라우유’를 마셔야겠지?』 (p.122)


  사우나든 목욕탕이든 마지막으로 발걸음 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내와 함께 가든파이브에 있는 찜질방에 간 것이 십여 년 전이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일주일에 6일은 피트니스 센터이든 수영장을 찾는다. 앞으로 사우나든 목욕탕이든, 그것들에 준하는 혹은 그것들와 연계되어 있는 문화를 좋아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눈 쌓인 야외 온천탕은 한 번쯤 경험하고 싶다, 아주 작은 곳으로...



정혜덕 / 아무튼, 목욕탕 / 위고 / 137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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