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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요조 《아무튼, 떡볶이》

인생 떡볶이 집을 향하는 행복한 집요함들이라니...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아내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근처의 맛있는 떡볶이 집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이 동네에서 가장 크다는 학원이 있었고, 덩달아 그 학원 옆 건물에 주먹대장이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의 분식집도 있었다. 동네에는 이 집 말고도 두 개의 떡볶이 집이 있었지만 아내는 주먹대장의 떡볶이를 제일로 쳤다. 지금은 재개발로 주먹대장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 사라져버렸다. 아내가 탐탁찮아 하는 두 개의 떡볶이 집만 남았다.


  “나는 어느 건물 지하의 오래된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떤 어른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다시 찾아 먹으며 자신을 닮은 자식을 품고 조용히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p.121)


  아내의 떡볶이 사랑은 언제나 유난하였지만, 연애 기간을 포함하여 거의 삼십여 년 동안 내가 그에 크게 호응한 적은 거의 없다. 대학에 다닐 때에 아내와 떡볶이를 먹어 본 적은 없다. 떡볶이는 술안주가 아니었고 해장용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잠실의 낡은 아파트에서 동거를 할 때에는 신천 새마을 시장의 즉석 떡볶이 집을 종종 찾기는 했다. 나는 졸아들기 직전의 그 국물로 해장을 했고, 떡이 아니라 거기에 들어 있는 오뎅과 쫄면에 손이 갔다.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공룡의 이름을 끝도 없이 줄줄 외우는 제하(달리는 공룡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작은 인간의 눈동자와 입술과 손가락을 보면서 나는 귀여움의 공포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진짜 무서운 것은 귀여움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악마가 시커멓고 꼬리가 길고 눈알이 빨갛고 이빨이 뾰족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직 안전한 것이다. 제하 같은 애가 악마였다면 세상은 진즉에 끝났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맥주를 벌컬벌컥 마셨다.” (p.16)


  결혼을 하고 삼전동과 석촌동에 사는 동안에 아내가 어떤 떡볶이 집을 자주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는 퇴근길에 종종 자신이 먹을 떡볶이가 들어 있는 검정 봉투를 덜렁거리며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한동안 내가 늦은 귀가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혼자서 많은 떡볶이를 먹었다. 아내는 언제나 퇴근할 때 내게 전화를 했는데, 늦는다는 내 이야기를 들을 때 종종 ‘그럼 난 떡볶이나 사다 먹어야지’ 라고 말하곤 했다.


  “꽃나무가 주는 향기를 맡는 일은 나에게 간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꽃나무는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서 향을 더 나눠주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떤 때에는 바로 곁을 지나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나무의 컨디션과, 그날의 바람과 온도,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의 내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아주 찰나에 좌우된다. 길을 걷다가 꽃나무 향기를 맡는 것도 나에게는 큰 횡재인 ” (p.53)


  책에는 이러한 아내가 눈독을 들일만한 떡볶이 집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홍대 떡볶이 정류장, 파주 코펜하겐 떡볶이, 국제시장의 떡볶이, 세검정의 떡볶이 카페, (이제는 없는) 박군네 떡볶이, 제주도의 캐나다 삼촌집, 서산의 얄개분식과 읍성분식, 이화여대 근처의 덕미가, 상계동 노원역 근처의 영스넥, 아차산역 근처 신토불이, 증산동 맛있는 집 떡볶이 등이다. 이중 증산동의 맛있는 집 떡볶이는 동생이 추천한 곳이기도 하다.


  “떡볶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자랑을 했더니 내 주변 다정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를 돕고 싶어서 만나기만 하면 늘 떡볶이집으로 안내하려고 했다... 어디 괜찮다는 떡볶이집을 알게 되면 어찌나 득달같이 제보들을 해주는지, 나는 자연스럽게 조금씩 떡볶이 맛집 인간 지도가 되어갔다.” (p.141)


  하지만 아쉽게도 당분간 아내는 떡볶이를 먹지 못한다. 당이 높다는 건강검진결과를 받은 이후 사 개월 동안 아내는 탄수화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잡히지 않던 혈당 수치는 최근에야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볶이를 향한 아내의 애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는데, 아내 또한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를 전자책으로 챙겨놓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아내는 아직 책을 읽지도 못하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떡볶이를 향한 욕구를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요조 / 아무튼, 떡볶이 / 위고 / 147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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