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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박연준 《모월모일》

온세상이 바이러스로 들끓어도 다글다글거리며 지속되는...

*2020년 3월 1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금요일 엄마는 전화를 걸자마자 자신에게 소홀한 큰아들을 타박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엄마와 내가 화요일에 만나 점심을 함께 했고 그로부터 고작 삼일이 지났을 뿐이라고 알렸고, 그러자 엄마는 ‘아 그래요 엄마,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꼬치꼬치 따져서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느냐’며 눈물 바람까지 하였다. 옆에서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아내도 엄마에게 뭐 그렇게까지 따지느냐 하는 시선을 보냈는데, 나는 엄마의 하소연과 아내의 시선을 안팎으로 하는 전화 통화를 삼십분 가량 이어가야만 했다. 


  “겨울밤은 야박하지 않다. 길고 길다. 먼 데서 오는 손님처럼 아침은 아직 소식이 없을 것 같으니, 느릿느릿 딴생각을 불러오기에 알맞다. 곶감이 녹으려면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감을 말릴 생각을 했을까? 말린 감은 웅크린 감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나 웅크릴 시간이 필요하다. 병든 자의 병도 잠든 자의 잠도 자라는 자의 성장도 비밀이 많은 자의 비밀도 겨울밤을 빌어 웅크리다가, 더 깊어질 것이다.” (p.14)


  토요일에는 아내와 잠시 다투었는데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이었다. 다툰 와중에도 자전거를 타고 상암동의 수영장에서 한 시간 동안 세 개의 영법을 골고루 이어갔다. 수영이 끝나고 잠시 쉬는 틈에 아내는 내게 지금 금연이 2주쯤 되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아무래도 형이 좀 예민해진 것 같다고 했다. 흡연의 욕구를 참는 것이 힘들지 않으니 그것 때문에 짜증이 날 일도 없다고 말했는데, 아내는 그것과는 별개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되는 것이라고 알려줬다, 자신도 그랬다며. 


  “가끔 사람도 한 그루, 두 그루 세고 싶어요. 내 쪽으로 옮겨 심고 싶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흙처럼 붉은 마음을 준비하겠어요.” (p.61)


  나는 저녁이 되어서 박연준의 책을 집어 들었다. 나도 모르는 내가, 그러니까 니코틴의 지속적인 주입으로 균형점을 맞춰왔던 내가, 돌연 사라진 기호로서의 연기를 잊지 못하여 만들어내는 불편부당한 예민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시인의 독특한 예민은 잠시 뒤로 물려 놓고, 산문가로서 삶의 여러 서운한 부분들까지를 조금조금 늘어 놓은 것 같은 글들은 아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사람. 턱을 괴고 멍하니 창밖을 보는 사람. 이들의 몸짓과 눈빛, 커피 내리는 작은 소음이 한데 어우러져 카페의 분위기를 만든다. 내게 카페는 집과 세상 사이에 돋아난 쉼표, 헝클어진 세상을 정돈하는 곳이다...” (p.165)


  오늘 아침에 기상을 하니 아내가 보리떡을 만들었다며 잠시 엄마에게 들렀다 오자고 했다. 나는 겨우 눈곱만 떼고는 차를 몰아 엄마에게로 향했다. 부모님은 그 시간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에서 플레이되는 예배를 시청하셨을 것인데, 우리는 그 온라인의 종교 행사가 끝나는 시간에 도착했다. 엄마는 금요일의 다툼의 여진이 남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 하였고, 보리떡을 드시고 난 아버지는 나와 아내에게 장문의 카톡 메시지를 남기셨다.


  “오래된 것이 도착했다. 시간은 가고 또 온다. 헌 날은 새날이었고 새날도 곧 헌 날이 되어, 우리에겐 ‘옛날’이란 시간만 자꾸 커질 것이다.” (p.198)


  나는 우리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 계속되고 있는데, 얼른 이 고역을 이겨내고 다음 주에는 엄마와 함께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면 좋겠다고 아버지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내도 답을 한다고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나보다는 더 친근하고 살가운 표현을 적절히 섞었으리라 예상할 뿐이다. 온 세상이 바이러스로 들끓는 와중에도 가족들 간의 거리는 멀어졌다 좁혀졌다, 그러는 중이다. 



박연준 / 모월모일 (某月某日) / 문학동네 / 207쪽 / 20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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