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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6. 2024

이기용 《아무튼, 기타》

내 기타에서 동생의 기타를 거쳐 다시 조카의 기타로 넘어가는...

  내가 기타를 아주 가까이에서 실물로 처음 대면한 것은 아마도 1984년일 것이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그해 겨울, 나는 잠실의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는데 옆 단지의 친구에게 놀러갔을 때 친구는 ’아침이슬‘ 이나 ’작은 연못‘ 같은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며 들려주었다. 당시 그 노래들이 차지하던 비중을 생각한다면 그 친구에게는 나이차가 있는 형이나 누나가 존재했을 터인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기타를 치기 위해서는 기타를 몸으로 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께가 약 10센티미터에 헤드부터 바디 끝까지의 길이가 1미터가 넘는 기타를 치기 위해서는 기타의 바디 부분을 가슴에 밀착시키고 양팔을 벌려 기타를 안아야 했다. 병원과 학교를 오가며 힘들어하던 내게 기타를 안았을 때 물리적으로 느꼈던 안도감과 포근함은 분명한 위로가 됐다...” (p.19)


  같은 해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하나의 악기를 가지고 치르는 시험이 존재했다. 시대를 앞선 몇몇 친구는 그 시험 시간에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우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친한 친구가 있었고, 기타를 들고 등장하여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연주했다. 씨와 에이 마이너와 디 마이너와 지 세븐이라는 초간단 코드로 이어져, 기타를 시작하는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노래였다. 우탕이는 코드와 코드 사이를, 물이 흐르듯이 아니라 징검다리를 건너듯 하였다.


  내가 내 소유의 기타를 가지게 된 것은 대학 신입생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작은 노트 크기의 노래모음집을 사고 거기에 딸려 있는 코드 잡는 이미지를 보면서 연습을 했다. 동아리방에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내게 기타를 잡는 시간이 많이 할애되지는 않았는데, 대부분의 시간 선배들은 동아리방에 있는 기타로 민중가요를 연주했고, 우리는 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다. 해가 바뀌고 나는 선배가 되었고, 이제 내가 기타를 잡았고 후배들이 노래를 불렀다.


  “메탈 음악으로 대변되는 1980년대가 끝나자 보다 실험적이고 다양한 장르의 밴드 음악들이 90년대 중반 홍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홍대 극동방송국 쪽에 있던 클럽 드럭에서는 크라잉 넛, 노브레인 등의 펑크록 밴드들이,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에 위치한 스팽글에서는 코코어, 허클베리핀 등 얼터너티브 음악을하는 밴드들이 연주했다. 그리고 홍대와 신촌 중간에 위치한 푸른굴양식장(후에 마스터플랜으로 바뀜)에서는 이제 막 태동하던 힙합 뮤지션들과 종종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이 펼쳐졌다. 그리고 지금의 상상마당 근처에 있던 클럽 블루데빌은 유앤미블루, 초기의 자우림 등의 밴드들이 연주했다. 이 외에도 재머스, 롤링스톤즈 등의 클럽들이 모두 반경 3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모여 있어서 주말마다 수많은 밴드들의 공연이 열리는 밴드 전성 시대가 이제 막 열리고 있었다.” (pp.68~69)


  위에 열거된 클럽들 중 마스터플랜과 불루데빌에 들른 적이 있다. 마스터플랜에서는 언니네 이발관의 공연을 보았고 블루데빌에서는 자우림의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대학에서의 공부가 끝이 나자 더 이상 기타를 잡을 일도 없게 되었다. 대신 ’기타와 쭈쭈바‘라는 제목의 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지금은 그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동생은 그 소설을 가지고 영화과의 졸업 작품을 찍었다.


  얼마 전 그 동생의 딸이 기타를 샀다. 아이유 기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크래프터 브랜드의 제품이라고 한다. 동생의 아내와 나는 조카가 홍대 아이유라고 불릴만한 인디 가수가 되면 좋겠다, 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조카는 우리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아이돌이 되어야겠다며 춤에 열중하고는 했다. 이제 조카는 춤은 춤대로 추고 노래는 노래대로 부르면서 기타도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글쎄, 아무튼, 기타라...



이기용 / 아무튼, 기타 / 위고 / 165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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