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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장석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간곡하게 생각하는 일 드물어지는 시절의 어떤 오후에...

  다독과 다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장석주의 산문집이다. 최근 문지에서 에크리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어 나오는 일련의 책을 비롯하여 그야말로 산문이 진열대를 범람하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소설을 비롯한 산문의 문장들을 읽는 일을 기꺼워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인데, 동시에 그 범람하는 문장 그리고 그 문장으로부터 비롯한 사려思慮들에 감응하는 경우는 또 드물어서 반갑기만 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 산문집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면서 스쳐간 감회들, 빛과 어둠, 기쁨의 약동들, 허무와 불안이 스미고 섞여 만든 양감量感이 있다. 세계의 고통이나 희망, 혹은 아름다운 신생을 짓눌러 터뜨리는 죽음을 향한 경멸과 증오, 우리 본성의 악에 대해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일상의 조촐한 일들, 작은 보람과 기쁨들에 대해 썼다. 결혼, 인생, 돈, 시간, 나이듦, 인생의 맛, 실패, 노스탤지어, 사라짐, 떠돎, 밤과 꿈, 시작과 끝, 해바라기, 작별 인사, 흡연, 일, 지복과 고독, 배움, 걷기, 숲, 단순한 삶, 도서관, 멸종, 어머니, 건널목 등등을 두고 혼자 궁구한 것들을 풀어서 썼다...” (p.7)


  읽기는 읽되 그저 읽는다는 초벌의 행위에서 그치고 마는 (산문들의) 독서에 지칠 무렵 장석주의 산문으로부터 작은 위안을 받았다. 작가 자신이 토로하는 바 ‘조촐한 일들’ 그리고 ‘작은 보람’과 ‘기쁨’으로부터 길어 올린 문장들은 조용조용 하면서도 사려 깊었다. 다독의 작가답게 무수한 책으로부터 뽑아 올린 인용문은 그에 맞춤한 작가의 소소한 생활로 곧장 연결되면서 말간 문장으로 쏟아졌다.


  “우리는 ‘박모薄暮의 시간’이라고 하고,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저녁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진다. 석양의 빛들이 사물과 풍경을 환하게 물들였는데, 어느새 빛은 증발해버리고 그 빈자리를 푸른 이내가 밀물로 밀려와 채우는 것이다. 밤나무들과 관목 숲, 너른 저수지, 이마에 닿는 산, 이웃들 집의 지붕들은 푸른 이내에 잠긴다. 푸른 이내가 빛과 어둠 사이의 시간대를 물들이지만 아직 빛은 완전히 탕진되지 않은 채 공중에 희미하다. 푸른 이내는 침묵과 부동不動이 불가피하게 빚어내는 빛이다...” (p.126)


  이 문장들을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에 읽었다. 그간 살아낸 시간들과 앞으로 살아내야 할 시간들의 사이에 가만히 앉아서 읽은 것 같다. 책을 읽다가 그 시간들의 어느 지점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또 책을 읽다가 다시 그 시간들의 어떤 지점에서 멈추고는 하였다. 나를 대신하여 책 속의 작가가 근심을 하였고, 나는 그 근심의 그늘 아래에서 그저 편안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시간 속을 스쳐가는 나그네들이다. 나그네들은 늘 자기가 머무는 지점에서 새출발을 한다. 그들은 과거에 구속되지 않으며 미래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꿈꾸지도 않는다. 나그네들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오직 현재에서 현재로 이동한다. 지혜로운 나그네들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근심하지 않는다. 한 끼니의 식사, 하룻밤의 잠이 보장된 것에 안심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근심이 없다. 과거도 모르고 미래도 모른 채 현재 속에서 사는 자들은 행복한데, 그들은 행복에서 근심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근심이 없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pp.198~199)


  언제 터질지 모르는, 드문드문 불안한 일상의 기포가 기척을 내기는 하였지만 잘 참아내면서 책을 끝까지 읽었다. 수면으로 튀어 올라 톡톡 터지려는 마음들을 책장들이 부여잡았다. 부산스럽던 고양이마저 잠자코 있어 나를 도왔다. 언제 떨어질지, 지상에 아주 가깝게 내려와 있는 습기들만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지상으로 비집고 내려온 빗방울들이 간혹 소란스러웠다.


  “... 흡연자는 직관적으로 담배가 무미한 시간을 견디게 만드는 벗이고, 권태와 허전함에 대한 위로라는 걸 파악한다. 담배는 쾌락 원칙의 이상 아래에 있는 기호품이다. 그것을 태우는 일은 외골수적인 욕망의 잔인함과 고집스러움의 끝에서 불타 사라지는 쾌락을 좇는 행위이다. 흡연에서 얻는 쾌락은 날카롭고 부드러운데, 이것은 다른 것으로는 대체되지 않는다...” (pp.273~274)


  근래 들어 간곡하게 생각하는 일이 드물어지고 있다. 드물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부러 피하고 있기도 하다. 생활에 간곡해지면 길게 연결되어야만 완성되는 생각들이 사치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호사를 누리고 싶지만 그럴 자격도 그럴 능력도 없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로부터 발원한 정체 분명한 웃음을 앞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많은데 자꾸 미룬다. 조금만 더 한껏 살아내고 난 다음, 이라고 변명하는 판이다.



장석주 /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 달 / 295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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