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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8. 2024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보고 듣고 읽고 만지고 싶은... 

  “밤이면 죽어가는 것들의 비명이 들렸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비명인가 싶었지만, 사람이 아닌 것들의 비명도 있었다. 거꾸로 살아 있는 우리는 말을 잃었다. 표정을 잃고 감정을 잃었다. 처음으로 공습 사이렌이 울려 방공호로 내려갔을 때부터 우리는 그랬다. 거기 방공호에는 어떤 말도, 표정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침묵과 무표정뿐이었다. 나는 방공호 밖에서 죽어가는 것들과 함께 우리의 말과 표정과 감정이 산산조각나 골목으로 흩어지는 광경을 상상했다. 바람의 장례식처럼.” (pp.9~10)

  - 되풀이되는 전쟁을 토대로 한 소설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요즘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 중 일부에 대해 갸우뚱 하는 중이다. 알렉산더니 징기스칸이니 나폴레옹이니 하는 정복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전쟁을 통한 통치 영역의 확대가 어떻게 위인의 조건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이를 통해 문명의 발전이 빨라졌다는 등의 소리도 마땅찮다. 전쟁을 일으킨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전쟁만은 좋은 전쟁이고 옳은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엄마가 죽은 뒤, 그는 마치 바람 부는 빈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라도 된 듯 그해 2월과 3월, 그리고 4월로 덧없이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겨울의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불과 한 달 전의 비극조차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파리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초록으로 물들이던 5월...” (p.69)

  -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소설집이다. 다만 실린 소설들의 길이가 애매하기 그지 없다. 단편 소설보다는 확실히 짧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엽편 소설보다는 확실히 길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는데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들고, 몰입이 되는 것 같은 순간 이야기가 멈추기도 한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장편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 단편 영화 같다고나 할까. 


  “...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p.113)

  -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라는 말이 너무 좋다. 그러니까 좋다는 말이지 그것이 하나의 명제로 작동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름 모를 지금과 앞으로의 많은 창조자들이 ‘이유 없는 다정함’에 의하여 작업을 시작하고 이어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흐뭇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독자들도 ‘이유 없는 다정함’으로 무장한 채 보고 듣고 읽고 만지고 할 텐데...


  “『월든』 같은 명저를 펴낸 날도 딱총나무에 물과일이 맺힌 날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소로가 가진 크나큰 힘이다. 소로는 삶의 근원적인 것만 접하기 위해 물질적인 소유를 줄여야 한다고 일기에 썼다. 나의 소유를 줄일수록 자연은 점점 늘어난다. 통나무집이 작아질수록 집 밖의 공간은 그만큼 불어나듯이.” (p.247)

  -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느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소로의 에세이 <시밀 불복종>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소로는 자연에도 인간 사회에도 꽤나 유익한 인물이었다. 


  “대학 시절 내겐 질문이 너무나 많았다.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도 어떤 질문이 밑도 끝도 없이 떠올랐고, 그러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질문들을 공책에 받아적었다... 받아적은 질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는다. 그래도 사라지는 질문도 있지만,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질문도 있다. 되살아나는 질문들은 마중물처럼 어떤 문장들을 끌어온다... 그것들은 내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이미지와 단어와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pp.256~257)

  - 질문이 줄고 있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질문의 메아리로 돌아온 대답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질문과 상관 없는 대답들, 오히려 질문을 무력화시키는 대답들, 더 나아가 질문을 짓밟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는 대답들에 질려 버렸다. 잘못된 것은 질문이 아니라 질문 같은 것은 필요치도 않다는 듯환 무소불위의 대답이었는데, 그만 질문을 줄여 버리고 말았다.



김연수 / 너무나 많은 여름이 / 레제 / 301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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