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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7. 2024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부사를 마음껏 사용하여 부사를 변호하는 작가의 마음에 홀딱...

  “책을 읽다 문득 어떤 문장 앞에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모르는 정보라. 아는 얘기라. 아는 얘긴데 작가가 그 낯익은 서사의 껍질을 칼로 스윽 벤 뒤 끔찍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 보여줘서. 그렇지만 완전히 다 보여주지는 않아서. 필요한 문장이라. 갖고 싶어서. 웃음이 터져. 미간에 생각이 고여. 그저 아름다워서. 그러다 나중엔 나조차 거기 왜 줄을 쳤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pp.238~239)


  정말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오래된 책에는 드문드문 밑줄이 있지만 그 용도를 떠올리지 못해 난감해하기 일쑤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밑줄을 긋지 않았다. 대신 읽는 동안 포스트잇을 붙인다. 모두 읽고 난 다음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페이지를 다시 들춰본다. 너무 긴 시간을 들여 완독하면 그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페이지 앞에서 멍해지기도 한다. 멍해지지 않으려고 되도록 빨리 읽는다. 


  “너를 안고 나는 내 팔이 두 개인 것을 알았다. 나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듯 ‘그래, 나는 팔이 두 개였지’ 중얼거렸다. 나는 곧 내 다리가 두 개인 것과 내 입술이 하나인 것도 알게 될까 두려웠다. 그러다 정말 내 이름을 알게 될까 봐.” (p.76)


  김애란의 재기발랄한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장편 보다는 단편이 좋다. 문장에 찰기가 있어 좋았다. 등단 무렵에 그 찰기가 가장 독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소설집이 출간되면서 조금씩 찰기가 빠져나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 문장의 맛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책에 실린 어떤 꼭지의 글에 작가가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을 모두 투고했다는 사실이 넌지시 실려 있다. 나는 시와 소설을 겸하는 혹은 겸하고 싶어 하였던 작가의 문장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나는 부사를 쓴다. 한 문장 안에 하나만 쓸 때도 있고, 두 개 이상 넣을 때도 있다. 물론 전혀 쓰지 않기도 한다. 나는 부사를 쓰고, 부사를 쓰면서, ‘부사를 쓰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한다. 나는 부사를 지운다. 부사는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버려지는 단어다... 나는 부사가 걸린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pp.86~87)


  실려 있는 글 중에 <부사副詞와 인사>라는 꼭지가 있다. 부사에 대한 변호의 변을 담고 있는데 그야말로 ‘정말’ 좋았다. 알만 한 사람은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글을 쓰는 이라면 거개가 가급적 문장에 부사를 사용하지 말 것을 종용받곤 한다. 부사가 가지고 있는 허위의 양태가 문장의 신뢰를 깎아 내리고 동시에 문장의 세련됨을 저어하게 된다는 것이 그러한 만류의 주된 이유이다. 


  “... 부사는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않다. 그것은 실천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만날 큰소리만 치고 툭하면 집을 나가는 막내 삼촌과 닮았다... 부사 안에는 뭐든 쉽게 설명해버리는 안이함과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안간힘이 들어 있다. ‘참’, ‘퍽’, ‘아주’ 최선을 다하지만 답답하고 어쩔 수 없는 느낌. 말言이 말言을 바라보는 느낌. 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 부사는 싸움 잘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는 중학생처럼 과장과 허풍, 거짓말 주위를 알찐거린다... 누군가는 문장론에서 ‘부사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썼다... 부사는 세계를 우아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흥미롭고 맛깔나게 해준다. 그러니 부사가 있을 곳은 지옥이 아니라 이 말도 안 되는 다급하고 복잡한 세상, 유려한 표현 대신 불쑥 부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속세, 그 세속에서 쓰이는 소설 안일 것이다. 부사를 변호했다. 기분이 ‘굉장히’ 좋다.” (pp.88~90)


  작가 또한 그러한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인데, 그러면서도 부사를 마음껏 사용하고 싶다는 속내가 없지는 않았나보다. 부사가 가지는 유치함을 ‘막내 삼촌’이니 ‘중학생’에 갖다 대고 있지만, 고까운 마음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유치함에 마음을 보태고 있다. 부사를 마음껏 사용하여 부사를 변호하고 있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못내 뿌듯해져버리고 마는 작가의 마음을 잘 알 것 같다. 


  “여름내 숙소와 연구실을 오가며 단순한 나날을 보냈다.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생활. 이른바 소설가에게 필요한 두 가지가 충족되었다. 글을 쓰다 목이 말랄 아래층 부엌으로 향하면, 개수대 위로 세계 각국의 ‘생각’에 중독된 인간들이 먹고 버린 커피 찌꺼기가 한가득 쌓인 게 보였다. 왠지 정이 가는 쓰레기였다...” (p.212)


  《잊기 좋은 이름》은 단시간에 씌어 진 것이 아니고 꽤 오랫동안 쓴 산문을 갈무리하고 있는 책이다. 작가가 된 초기의 이야기들, 작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고, 몇몇 곳에서는 소설을 쓰면서는 하기 힘든 추상의 문장들을 적고 있기도 하다. 2부에 실린 글들은 작가나 작품에 붙여 이미 내놓았던 글들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들마저 보다 사적인 작가의 것으로 대체되었다면 좋았겠다.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 열림원 / 303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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