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며 지나간 시간들이 연기처럼 홀연히...
*2019년 6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한때는 남자와 여자, 심지어 어린이들도 (남몰래) 담배를 피웠다.“
대학 새내기였던 아내는 담배를 이제 막 피우기 시작한 참이었다. 이제 막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팁을 아내에게 가르쳐주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의 어느 위치에 담배를 끼울 것인지, 담배의 재를 털 때는 타들어가는 중인 담배의 어디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야 하는지 등이었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내는 너무 어려 보이는 얼굴이어서 (게다가 여성이었으므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기가 만만치 않았다.
“담배를 함께 피우며 우리는 세상에 대한 견해를 교환했다. 서로의 여행을 이야기했고, 계급투쟁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는 꿈을 교환했다. 우정을 나누었다.“
수업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 담배를 피웠다. 빈 강의실을 찾아 마르크스를 학습하는 동안에도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힘껏 화염병을 던지고 돌아온 다음에도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떠들다가 차량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들리면 서둘러서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힘껏 마지막 힘을 모아서 끽연을 즐겼다. 가끔 지하철에 놓인 공용 재떨이에서 장초를 골라내곤 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담배를 피웠고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피웠다. 재떨이는 호의를 나타내는 물건이었다.“
아내의 의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때에도 나의 의견에 아내가 반론을 제기할 때에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크게 다투는 와중에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결혼을 한 다음 아내는 침대 위로 재떨이를 가져오도록 했다. 자동차에는 내가 피우는 담배와 아내가 피우는 담배의 냄새가 동시에 배어들었다. 담배를 피우고 난 다음이면 아내는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를 뿌렸다.
“그러다 어떤 일이 벌어졌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흡연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공표되었다. 흡연이 사회악이 되었다. 흡연자는 부주의한 살인자가 되었다. 흡연은 고독하고, 도착적인 행동이 되었다.“
어제 저녁 아내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전자 담배 스틱을 사용했다. 아내는 한 해 전쯤부터 전자 담배를 사용하고 있었다. 두어 달 전 아내는 자신이 서서히 담배를 줄일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리고 자신이 공언한대로 조금씩 담배를 줄여갔고, 어제 마지막 담배를 피웠다. 괜찮은 것이냐고 슬쩍 물었더니 아직은 괜찮다고 대답한다.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을만하다고 한다.
“그 사이, 제약 없이 쏟아낸 일산화탄소로 인해 지구온난화는 계속 진행되었다. 폭스바겐은 그들이 제조한 차량의 배기가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그 사이 공공장소에서는 실내나 실외를 가리지 않고 애연가들이 사라졌다. 같은 은신처로 흘러 들어간 그들은 추방자가 된 서로를 보며 행복해 했다. 그저 담배 한 대 피우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스모크》는 존 버거의 약간의 글과 셀축 데미렐의 삽화로 이루어져 있다. 마침 아내의 금연이 시작되는 날 읽게 되었다. 읽는다, 라고 이름붙이기 보다는 보았다, 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온당하기는 하다. 책의 메시지는 흡연자를 죄인으로 몰지 말고 현대 산업 사회가 뿜어대는 시커먼 연기들이나 좀 줄여보시지, 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나의 흡연량을 지금의 절반쯤으로 줄이기로 했다. 아내의 금연을 절반쯤 응원한다는 의미이다.
존 버거 / 셀축 데미렐 그림 / 김현우 역 / 스모크 (SMOKE) / 열화당 / 69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