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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8. 2024

황선미 《익숙한 길의 왼쪽》

통증과 흉터로도 물려 받을 수밖에 없는 돌아옴의 궤적...

  최근 오래전부터의 후배와 홍제천을 산책했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데를 한참 걸었다. 힘겨운 직장 생활 동안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징징거렸다고 후배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이명으로 아픈 동안 하소연을 듣는 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나는 니 나이 때 과부가 됐어, 이것아.” 분위기가 울적해지려는 순간 후배는 자신의 징징거림에 대한 엄마의 일갈을 전했다. 그 말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나는 한참을 웃었다.


  『여동생은 내 왼쪽 새끼손가락 만져보기를 좋아했다.

  손가락 첫 마디는 피부로만 감싸인 듯 힘이 없고 둘째 마디는 부러진 뼈가 뭉쳐서 뭉툭해진 게 여동생 눈에는 신기해 보였던 거다.

  “이 손가락은 점점 배가 불러서 나중에 쪼그만 손가락이 또 태어날 거야.”

  “응. 그럴 거야.”

  여동생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p.15)


  산문집에 실린 첫 번째 글의 서두이다. 산문집의 첫 번째 챕터인 ‘오래된 통증’에는 작가의 개인사가 가슴 아프게 실려 있다. 오빠 그리고 세 명의 동생 사이에서 내가 이런저런 통증 그리고 흉터를 가지고 살아낸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네 타다 다친 새끼손가락과 어미의 매를 막다가 다친 새끼손가락 사이에 있는 나, 다래끼가 심해져 눈을 덮어버린 종기를 혓바닥으로 핥으며 독으로 독을 잡으려던 엄마가 거기에 있다.


  “내 발등에는 죽은 거미가 남긴 듯한 일그러진 자국이 있다. 오래된 거미줄 같은 흔적. 뜨겁게 살이 파였으나 기어이 아물고 기특하게 건재하여 쉰해가 넘도록 나를 지탱하고 있는 나의 발 무늬. 지독한 엄마가 나에게 나누어준 뼈와 살의 크기.” (p.48)


  가슴 아파 못 읽겠네 싶지만 두 번째 챕터와 세 번째 챕터보다는 첫 번째 챕터의 울림이 깊다. 밝지 않은 경험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어, <마당을 나온 암탉>과 같은 동화로 이어지게 되었을지 짐작해볼 수도 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재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고, 세 번째 챕터에서는 현재의 일상들 중에서도 여기가 아닌 저기에서의 경험을 중심부 삼아 글을 쓰고 있다. 


  “... 낯선 길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내가 어린애처럼 세상을 보고 작은 것도 기쁘게 관찰하도록 해주었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의 왼쪽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왜 나는 한가지 길밖에 몰랐을까. 익숙하고 편리한 게 전부가 아닌 줄 그때 이미 알았으면서도 나의 오른쪽이 무너지고 있는 줄은 이렇게 몰랐다니.” (p.148)


  위와 같은 문장들에도 불구하고, 세 번재 챕터에 등장하는 터키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 빈이나 부쿠레슈티나 노리치와 같은 도시들을 일삼아 방문하는 여정들이 작가에게 그리 행복감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떠나고 돌아오는 일의 반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떠남’ 아니라 ‘돌아옴’에 방점을 찍는 작가의 태도 덕분일 수 있겠구나 싶다. 행복감 보다는 낯선 감정이 만들어내는 뭔가가 더욱 필요한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아, 사람의 집은 사람이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남편은 지인에게 말할 때 나를 집사람이라고 하고 거기에 내가 토를 달아본 적 없지만 남편이야말로 나의 집사람이다. 나는 늘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 남편은 텃밭의 푸성귀며 고구마며 복숭아를 참 잘도 키워내는 사람. 내가 떠난 뒤에 느끼는 공허감에 대해 말할 때 남편은 정말 집사람 같았다.“ (p.157)


  함께 홍제천을 산책하였던 후배의 오래전 한 마디를 나는 여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때, 작업실을 낸 후배에게 나는, 너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꾸준히 자리에 앉아 버텨보면 어떻겠느냐, 하나마나한 훈수를 두었다. 내 말에 후배는, 형 그렇게 꼼짝 안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재능이에요, 라고 말했던가. 그리고 우리는 엊그제, 홍제천에서 남가좌동과 홍은동과 연희동을 두루두루 걸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황선미 / 익숙한 길의 왼쪽 / 미디어창비 / 203쪽 / 20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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