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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장류진 외 《여행하는 소설》

여기가 아니라 거기여야 하는 모호한 뉘앙스의...

  장류진 「탐페레 공항」

  ”공항 주변은 줄기가 새하얀 자작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온통 푸르기만 하였던 땅이 착륙하면서 하얗게 변하던 순간을, 마치 벨벳의 결을 따르게 넘기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나무 아래 벤치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p.19)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중에 경유해야 했던 핀란드의 작은 도시 탐페레, 그곳에서 만난 노인, 그의 제안에 따라 공항을 벗어나고 그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와중에 내가 하고자 하였던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나 돌아와 많은 것들을 잊고, 그렇게 잊은 채로 살아가고, 그러다가 문득... 다시 모든 장면과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그러니까 그것이 여행...


  윤고은 「콜럼버스의 뼈」

  자신의 기원 그러니까 아버지를 찾아 세비야를 돌아다니다 만나게 된 마차를 모는 남자. 내가 가지고 있는 주소는 흐릿하고 남자가 내게 건네는 콜럼버스의 뼈에 대한 이야기는 애매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세비야라는 도시와 어울리는 것이라면...


  기준영 「망아지 제이슨」

 룸메이트인 일리아를 구해주었던 남자, 그 남자의 뇌에 문제가 생기고 그 남자의 아이인 태은을 잠시 맡게 된 나... 그리고 엘리아와 엘리아의 남자 콜린, 나 동희와 태은, 이들은 함께 산에 오른다. ”태은과 나는 차례로 씻고 나서 얇은 여름 잠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도로 나왔다. 일리아는 소파에 드러누워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있었다. 태은이 일리아 곁으로 가서 소파 팔걸이에 얌전히 몸을 기대앉았다. 나는 거실의 조명 밝기를 낮추고 어둠이 내린 창가로 다가섰다. 휴대폰으로 드뷔시를 검색해 보았다.“ (p.99)


  김금희 「모리와 무라」

  엄마인 해경과 나, 그리고 숙부가 함께 하는 일본 여행의 이야기이다. 호텔리어로 평생을 살고 이제 은퇴한 숙부의 이런저런 태도가 깔끔하게 그려지고 있다. “... 운주는 뭘 잡는지 허공을 잡아챘고 그것이 꽃잎이었는지 하루살이 같은 날벌레였는지 아니면 빈주먹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손을 풀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었다.” (p.109) 그리고 나는 헤어졌던 운주와 다시 만나 결혼을 하였고, 그사이 숙부는 돌아가셨다.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 세상의 모든 목적지들이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사람에게 목적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이 떠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인간들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p.139) 나와 그녀가 인도를 여행하는 중에 만났던 일본인, 일본인 친구보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외할아버지가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오키나와 태생이었던, 하루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일본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지 다른 하루오’라고 농담하던 하루오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와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딘가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할 때의 그 ‘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온전히 그 ‘적’에 해당하는 것도, 그렇다고 그 완전히 자유롭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것을 몸소 보여준 하루오 같은 인물도 있는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도...


  김애란 「숲속 작은 집」

  한국에서 비행기로 일곱 시간 거리에 있는 산악 도시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곳에 집을 빌려 머물렀던 한 달 여의 기간 동안 나와 지호가 기거하였던 ’숲속 잡은 집‘, 그곳에서 가사를 도왔던 한 여인과 그녀의 딸에게 품었던 나의 과민한 생각이 있었다.


  천선란 「사막으로」

  “옛날에는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아. 요즘에는 그 반대 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것 같아.” (p.228)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것 같아.‘라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몇 해 전 후배 J는, 일 년 중 절반은 아시아의 바닷가와 산을 찾아 헤매는 그가 부럽다는 나를 향해, 나는 여기에 있어도 행복한 형이 부러워요, 어떻게든 떠나야만 행복한 나보다, 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장류진, 윤고은, 기준영, 김금희, 이장욱, 김애란, 천선란 / 여행하는 소설 / 창비 / 240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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