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불화하는 세계를 끌어안은 채 묻혀 있던...
《파묻히 거인》은 최근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다른 소설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나를 보내지 마》가 비록 SF 장르의 외양을 띠고 있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그 가상의 현실 세계를 현실로 세계의 일원으로 확정하여 서술하였다면 《파묻힌 거인》은 5세기 혹은 6세기 즈음의 잉글랜드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서왕의 전설과 같은 중세 무훈담을 원류로 삼고 있는 것이다.
“맞습니다, 부인. 하지만 우리 뱃사공들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속임수를 꿰뚫어 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요. 게다가 가장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할 때에는 진실을 숨기는 게 힘들지요. 부부는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는데도 우리 뱃사공의 눈에는 분노나 화, 심지어는 증오가 보일 때도 있어요.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기만 한 경우도 있고요. 더러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다른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보여요. 오랫동안 이어져온 지속적인 사랑, 그런 걸 보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요. 그런 사랑을 보게 되면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두 사람을 함께 배에 태워 갑니다. 부인, 제가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군요.” (p.69)
하지만 작가가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방식 그러니까 해답이 아닌 물음으로서의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브리튼 족 노부부 그리고 색슨족의 기사와 소년은 동상이몽으로 함께 여정을 하지만 작가는 이들 중 어느 한 쪽으로 자신의 생각이 쏠리는 것을 철저히 방어한다. 로마라는 선진 문명의 지배를 받았고 초기 기독교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브리튼 족과 잉글랜드로 이주한 게르만족의 일원으로 그만큼 덜 문명화되어 있는 색슨 족,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지 않는다.
“... 우리는 저녁 내내 많은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중에는 부인이 아주 적절하게 이름을 붙인 이 안개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묻고 또 물었지요.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뭔가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에 나는 그 이야기를 그냥 무시해버렸어요. 하지만 그 후로 자꾸 생각이 나더군요. 그 타지 사람은 어쩌면 하느님이 과거에 있었던 우리의 많은 일들을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 일이 아주 오래된 일일 수도 있고 그날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고 했지요. 만일 하느님이 어떤 일을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 머릿속에 그 일이 남아 있을 리 있겠어요?” (pp.99~100)
대신 작가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깊숙이 소설 안으로 끌어들인다. 소설 속 여정의 시작에서 끝까지 함께 하는 브리튼 족의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인식한다. 비어트리스는 이 망각의 원인이 안개라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아들을 찾으려는 여정에 나서고, 자신이 들른 마을에서 색슨 족의 기사인 위스턴과 도깨비에게 상처입은 소년 에드윈을 만나게 되고, 이어 아서왕의 조카인 (그러나 이제 늙어버린 원탁의 기사의 일원인) 가웨인 경이 그 여정에 동참한다.
“무한한 자비를 가진 신이 무슨 소용이 있지요? 신부님은 절 이교도라고 놀리지만 우리 조상이 믿는 신들은 그들의 방식을 명확하게 밝히고 우리가 그 법을 어겼을 때 엄격하게 벌을 내립니다. 신부님의 기독교에서 믿는 자비의 신은 사람들이 몇 차례의 기도와 작은 속죄로도 용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탐욕을 추구하고 땅과 피를 향한 갈망을 좇도록 자유를 주어요.” (p.226)
망각이 보편화되어 있는 그곳에서 두 사람의 여정은 기억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여정에 동참한 색슨 족의 전사 위스턴 그리고 아서왕의 조카인 가웨인 경(아서왕의 전설 중 원탁의 기사의 일원인)은 안개를 일으키는 암용 케리그의 제거라는 또다른 목표를 공유한다. 하지만 결국 망각의 원인이 안개이고, 그 안개를 발생시키는 것이 암용 케리그라면 이들 모두는 기억의 복원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닌 셈이다.
“내가 그 사람이었다고 해도, 선생, 나는 지금 오로지 이 용의 입김이 만든 안개 속에서만 그를 알 수 있어요. 그는 어리석은 몽상가로 보이지만, 그래도 좋은 의도를 가졌던 사람이고, 엄숙한 맹세가 잔인한 학살로 깨져버린 걸 마음 아파했지요. 색슨족 마을을 다니면서 협정 내용을 알린 사람들은 많았어요. 하지만 내 얼굴이 당신 마음 속의 뭔가를 건드린다면, 그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고 여길 이유는 없지요.” (p.437)
하지만 기억의 복원이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기 힘들다. 노부부의 복원된 기억은 두 사람을 같은 공간에서 머물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고, 복원된 기억은 이제 어쩌면 브리튼 족과 색슨 족의 또 다른 살육전의 시작을 선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작가는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인 기억은, 정보를 저장하고 상기시킬 수 있는 이 능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커다란 질문을, 그러니까 ‘파묻힌 거인’을 우리의 면전에 들이밀고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 하윤숙 역 / 파묻힌 거인 (The Buried Giant) / 시공사 / 479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