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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데이비드 로지 《교수들》

허명에 기대어 전세계를 떠도는 문예, 지식, 로맨스, 추리 서스펜스물..

  책을 읽다 잠시 홍상수의 영화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홍상수의 영화에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인 연 하는 이들을 향한, 누워 침 뱉기 식의 캐릭터 부여가 소설 《교수들》에 등장하는 학자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구걸에 가까운 원나잇 구걸 정도는 아니지만 이성을 향한 노골적인 구애도,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는 허약한 지식인의 허약한 명예도 자주 등장한다.


  “... 그들은 이제 3일 동안 꼼짝없이 함께 지내야 했다. 함께 자리해서 먹는 하루 세 끼 식사, 바에서 하루 세 번 갖는 사교 시간, 버스 관광 한 번, 연극 관람 한 번 등등. 장시간에 걸쳐 의무적으로 붙임성 있게 굴어야 했다... 그들은 학술회의가 끝나기 오래전부터 벌썩 같이 있다는 게 지겨워질 것이고, 서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을 것이며, 식탁의 어떠한 자리 배정도 마음에 들지 않게 될 것이다. 게다가 흡연, 음주로 인한 구취, 평상시보다 다섯 배는 더 말을 해야 함으로써 오는 구취, 텁텁한 혀, 가시지 않는 두통 등 일상적인 학술회의 증후군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p.29)


  소설은 학술대회에서 시작하여 학술대회에서 끝난다. 시작은 영국의 작은 대학인 러미지 대학의 학술대회에서 시작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57명짜리 초청자 명단이라는 작은 규모 그리고 그 작은 규모를 더욱 눈에 띄게 만드는 유명 인사의 부재를 절감한다. 하지만그곳에서 퍼스 맥개리글은 안젤리카라는 운명의 여인과 조우하게 되고, 이제 소설은 학술회의라는 공간적 배경 위에 퍼스와 안젤리카의 쫓고 쫓기는 추격 로맨스를 덧씌운다.


  “각종 학술대회에 초청되기 시작했고 다른 대학들에서 외부 심사위원으로 삼기 시작했죠. 영국문화협회의 해외 순회강연자 명단에 그이의 이름이 올라갔어요. 요즘 그이는 항상 어딘가 여행하느라 집을 떠나 있어요. 몇 주 있으면 터키에 갈 예정이고 지난달에는 노르웨이에 갔다 왔어요... 오늘날의 학자들은 옛날에 편력하던 기사들처럼 모험과 영광을 찾아 세상길을 방랑하는 거요.” (pp.131~132)


  이와 함께 어느 정도 스타성을 가진 학계의 인사인 모리스 잽 또한 소설의 한 축으로 등장한다. 그는 학계의 스타로서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 10만 달러라는 연봉 상한선을 (소설이 1984년 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 만족시켜줄 직위를 향한 염원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이혼한 아내가 등장하는데 소설의 어느 순간 납치범에게 납치되고 풀려나는 에피소드를 책임진다.


  “전세계의 학계가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요즈음 대서양 횡단 항공편의 절반은 대학 교수들이다. 그들의 짐은 책과 페이퍼의 하중 때문에 평균 수화물 중량을 웃돈다―뿐만 아니라 부피가 턱없이 큰데, 야회복과 평상복, 강연 참석용 복장, 그리고 해변, 박물관, 고성, 대성당, 민속촌에 갈 때 입는 옷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술회의 순회여행의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는 까닭이다. 그것은 자기의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일을 유희로 전환시키고, 직업의 전문성에 관광을 결합시키는 한 방식이다. 논문 한 쓰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p.414)


  퍼스 맥개리글, 모리스 잽과 함께 필립 스왈로 또한 소설의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하룻밤 여인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 이후 새롭게 마지막 로맨스를 불태운다. 동시에 주목을 받지 못하던 책이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면서 학계에서의 위치 또한 상승하게 되는 행운을 갖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재향군인병이라니! 그 무섭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 의료계에서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 전염병, 3년 전 필라델피아의 벨뷰 스트래트포드 호텔에서 열린 미국재향군인 연차총회를 내리쳐서 감염된 사람 중 여섯의 하나를 사망하게 만든 그 병이라니! 근래 모든 학술회의 참가자들이 내심 두려워하는 병, 학술회의의 성병, 죄의 삯, 가정과 본분을 떠난 그 모든 여행, 화려한 호텔에서의 체재, 자기도취적 행위, 파티, 지나친 방임 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천벌, 그 재향군인병이라니!” (pp.541~541)


  이외에도 소설에는 꽤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 대부분은 학술회의라는 세계의 시민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내부 고발자 같기도 하다. 그들로 표상되는 학술회의의 세계가 마냥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소설이 1984년작이니 40년전 학술회의의 모습이라는 오류는 어느 정도 조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들의 DNA가 얼마나 크게 바뀌었을까 싶다. 물론 코로나 형국 이후 학술회의의 표피에는 별 수 없는 변화가 있었을 것이지만...



데이비드 로지 David Lodge / 공진호 역 / 교수들 (Small World) / 마음산책 / 600쪽 / 2009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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