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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김훈 《허송세월》

매일매일 벌어지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져서 공원에 나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었고 여름의 나무들은 힘차다.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겨울에 죽고 새 매미가 우는데, 나고 죽는 일은 흔적이 없었고 소리는 작년과 같았다. 젊은 부부의 어린애는 그늘에 누워서 젖병을 물고 있고 병든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온 노인은 아내에게 부채질을 해 주고 물을 먹여 주고 입가를 닦아 주었다.” (p.127)


  48년생이니 김훈의 나이가 칠십대 중반이다. 작가의 산문 여기저기에서 그 나이가 짐작된다. 나이 먹었음을 부러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랑 삼지도 않는다. 계간 《문학동네》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라는 제목의 연재가 시작된 것이 1994년이니, 김훈은 기자 이후 작가라는 직업으로도 삼십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 긴 세월 작가로 밥벌이를 하면서 느낀 바에 대해 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주어와 술어를 논리적으로 말쑥하게 연결해 놓았다고 해서 문장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주어와 술어 사이의 거리는 불화로 긴장되어 있다. 이 아득한 거리가 보이면, 늙은 것이다. 이 사이를 삶의 전압으로 채워 넣지 않고 말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말로 건너가려다가는 허당에 빠진다. 허당에 자주 빠지는 자는 허당의 깊이를 모른다. 말은 고해를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주어와 술어 사이가 휑하니 비면 문장은 들떠서 촐싹거리다가 징검다리와 함께 무너진다. 쭉정이들은 마땅히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므로, 이 무너짐은 애석하지 않다. 말들아 잘 가라.” (p.39)


  애초에 스스로 기대한 바는 아니겠으나 김훈은 어느 순간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획득한 영화, 라는 말을 김훈의 몇몇 소설에 가져다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적 사실로부터 충실하게 길어 올린 몇몇 소설들이 그랬다. 나는 그 몇몇 소설을 읽지 않고 지났는데, 애초에 작가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가의 산문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음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p.50)


  미적지근하지 않고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작가의 문장이 좋았다. 작가의 문장이 좋았다기 보다는 작가의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속도가 좋았다고 해야겠다. 이것저것 재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인 남성적 꾸밈만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이제 작가의 문장에서 그러한 속도의 힘은 보이지 않는다. 힘은 빠졌어도 속도는 남았다. 때때로 읽는 동안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 이 세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성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마음에서 겸손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갖출 수 있다. 겸손과 조심스러움을 상실한 태도가 이 불완전한 세계 위에 지옥을 완성한다. 이 지옥의 이름은 파시즘이다.” (p.284)


  최근 나는 큰 사고를 당하여서 수술을 하였고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보냈으며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다, 고 하면 거짓이지만 주변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요 몇 년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부모님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며, 그 수발에서 촉발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내 육체를 한계치까지 닥달하였는데, 어쩌면 그 후과였는지도 모른다. 


  “의견과 사실이 뒤섞여 있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듣기의 헷갈림은 시작됩니다. 아마도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려는 충동은 인간의 언어의식 밑에 깔린 잠재 욕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기의 어려움입니다.


  당파성에 매몰된 사람들이 목전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이념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의견과 사실을 뒤섞고 모자이크해서 내놓는 말들은 이 시대에 넘쳐 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듣기의 괴로움입니다. 듣기의 괴로움과 말하기의 어려움은 순환관계입니다.” (p.297)


  김훈의 이런저런 산문을 통해 산과 자전거를 타는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원하는만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지금 원하는 바에 따라 원하는 만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삶을 미리 겪고 있다. 사고가 아니어도 이십 년 혹은 삼십 년 후라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고일 수도 있겠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젊었을 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 나는 세상 속으로 내려가고 싶었고, 산 밑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볼 때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지금은 이쪽저쪽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둘레길을 조금 걷다가 마을버스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p.10)



김훈 / 허송세월 / 나남 / 332쪽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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