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8. 2024

조해진 《빛의 호위》

현재는 항상 어떤 과거의 결과일 뿐, 어떤 미래의 원인이 될 것 같지는

  「빛의 호위」

  201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다. 당시 이렇게 적었다. “실려 있는 작품들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작품이다. 젊은 사진 작가인 권은과 나 사이의 어떤 인연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면, 알마 마이어와 그의 아들 노먼 마이어 그리고 알마를 숨겨 주었던 알마의 연인인 장의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권은과 나 사이의 이야기가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연결되고, 알마의 이야기가 헬게 한센의 영상에 의하여 풀어지는데 이 둘이 어긋남 없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고 생각된다.”


  「번역의 시작」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던 태호는 나에게서 받은 돈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태호를 좇아 미국으로 왔고 태호의 집에 머물고 있다. 태호는 내게 돈을 갚겠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나는 태호의 집, 그 건물의 청소를 맡아 일하는 안젤라를 유일한 친구로 두었다. 그리고 그 안젤라와 겹쳐 나의 영수씨, 나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간단한 소지품만으로 돌아왔던 영수씨가 존재한다.


  「사물과의 작별」

  “특별한 사람과 관련된 일련의 기억은 연극과도 같아서 기억 속 장면들은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인위적인 무대에서 연출될 때가 많다. 기억의 주체는 감정적으로 과잉되기 마련이고,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소품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p.71) 유실물 센터에서 일하는 나와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있는 고모, 그리고 고모의 과거의 기억을 향한 조심스러운 접근... 일본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엮은 사건으로부터 길어 올린 소설 한 편...


  「동쪽 伯의 숲」

  “... 부끄러웠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 날 견딕 해주더군요...” (p.114) 지금의 발터 그리고 내가 주고 받는 편지를 통하여, 그때 한나와 안수 리의 짧은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기에 독일 동백림 사건이 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행되었던 국가 권력의 만행이 후일 어떤 이야기가 되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읽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들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자들일 뿐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산책자의 행복」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라는 말, 오래 전 나는 이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중국인 유학생 메이린은 나를 라오슈(老師,) 그러니까 은사라고 불렀다. 나는 이제 교수가 아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병든 어머니를 모시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혹시 나를 알아보는 제자가 있을까 걱정하는 내게 메이린은 아직 이메일로 안부를 전해오고, 나는 아직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잘 가, 언니」

  잊고 있던 언니를 떠올린 것은 차학경, 《딕테》라는 유일한 유작을 통해 회자되는 인물, 그 인물에게 보냈다는 그 여동생의 편지를 통해서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비행 공포증의 연원,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이미 십칠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의 정체, 그것이 ‘잘 가, 언니’라는 말로 떠나보내질 것인지...


  「시간의 거절」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는 사람의 내면을 그린 지도 같기도 했다. 특수 용액에 담그면 저절로 그림이 스며드는 종이처럼 몸 안 구석구석으로 들어간 연기는 눈에는 보일 리 없는 그곳의 풍경을 담아 나오는 것이다...” (p.176) 조해진은 예민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는 아니다. 약간의 질시를 갖고 예민하게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를 바라보는 작가쯤이 아닐까 넌지시 짐작한다. 소설은 미국의 작가 재인이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석희에게 갖게 된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이 작품으로 다시 석희의 미국 방문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문주」

  철로를 걷다가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고아원에 맡겨지고 다시 입양의 절차를 밟아야 했던 문주, 그 문주라는 이름은 기관사에 의해 얻게 된 것이 확실한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 이곳에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는 상상을 자주 했다. 여섯살의 문주가 서른일곱살이 될 때까지 한국의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그 상상이 나는 좋았다. 한국에서 문주는 어떤 여자가 되었을까...” (p.208) 어쩌면 작가는 이 상상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작은 사람들의 노래」

  여러 이야기가 서로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보육원에서 린치를 당하였고 어른에게 실망 아니 절망하였던 어린 균은 이제 성인이 되었다. 균과 함께 일하던 송은 노동 현장에서의 사고로 사망하였고, 균은 송의 변호사가 원하는 답변을 하기를 거부한다. 균은 필리핀 어린 앨리의 후원자이지만 소설의 말미에 그 후원자 노릇을 그만하기로 작정한다.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노래하는 소설이다.


  뭐랄까, 작가의 단편 소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의 인물만을 사용하고, 소설은 그 인물들의 지난 과거로 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연원은 반드시 과거에 있다고 너무 크게 소리친다. 소설 속에서 현재는 항상 어떤 과거의 결과일 뿐이지, 어떤 미래의 원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소설들은 과거 지향적인데, 그것이 좀 지독해 보인다. 



조해진 / 빛의 호위 / 창비 / 268쪽 / 2017 (2017)

매거진의 이전글 김금희 《2017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