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샴페인 친구》

내용물을 다 마셨는데, 그제서야 병뚜껑이 펑, 하고 열린 것처럼...

by 우주에부는바람

샴페인을 먹어 본 적은 있겠지만 즐기는 술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샴페인은 음, 이라고나 할까. 모든 종류의 음악을 듣지만 클래식은 음, 과도 비슷하지만 모든 종류의 책을 읽지만 처세서는 음, 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물론 소설의 제목인 샴페인 친구는 꼭 샴페인과 관련된 친구라고는 할 수 없다. 실은 술친구에 가깝다. 소설의 원제인 Pétronille 는 소설 속에서 나의 술친구인 페트로니유 팡토를 가리킨다.


“나에게는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다. 페트로니유가 이상적인 술친구로 밝혀진다면? 물론 쉽지 않았지만, 그녀를 술친구로 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나를 어려운 상황에서 꺼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술이나 한잔 사고 싶다며 그녀를 짐나즈로 초대했다. 내가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 수락했다.” (pp.24~25)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의 나는 아마도 아멜리 노통브일 것이다. 직업은 소설가이고 어느 정도 유명하다.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이고 서점에서 종종 사인회를 개최한다. 내가 페트로니유를 만난 것도 바로 그 사인회에서였다. 페트로니유는 스물이 넘었지만 열 다섯 살 소년의 용모를 가진 여성이다. 무심하고 시크한데, 나는 그녀를 나의 샴페인 친구로 삼기로 한다.


“... 극좌파의 이상에는 찬동하지만, 뻔뻔할 정도로 추하기만 한 골동품, 충격적일 정도로 멍청한 독서,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의 미학에 거부감을 느끼는, 부조리하게도 귀족적인 취향을 가진 소녀의 진정한 고통을.” (p.121)


그렇게 나는 그녀와 함께 때때로 만나 술을 마시고 일탈의 순간들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 사이 페트로니유는 글을 쓰고 책을 낸다. 페트로니유 또한 작가가 되었다. 역자에 따르면 소설 속 인물인 페트로니유 팡토의 실제 모델은 스테파니 오셰라고 한다. 책에는 페트로니유의 소설이 몇 권 등장하는데, 이 소설들은 모두 스테파니 오셰의 소설 제목을 조금씩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찾아봤어. 식당 종업원, 자습 감독, 영어 과외...... 그런데 지루하고 글 쓸 시간도 안 남아. 네가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란 거 알아? 책을 출간한 작가 백 명 중 단 한 명만 그럴 수 있어. 단 한 명만!” (p.160)


하지만 이 술친구의 관계가 그렇게 행복에 겨웠던 것은 아니다. 잘 나가는 소설가, 그리고 소설을 발표하기는 하였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설가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녀를 돕고자 하지만 그녀의 캐릭터는 만만치가 않다. 그녀는 훌쩍 일상으로부터 달아나 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또 그만큼이나 갑자기 돌아와 나를 놀래키기도 한다.


“페트로니유는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빠져나가 파리의 지붕들 위로 사라졌다. 내 생각에는 그녀가 아직도 그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 한편, 나는 수로 밑바닥에서 얌전한 시체가 되어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나한테 아무 쓸모도 없는 교훈들을 얻는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는 걸 아무리 알아도 소용이 없다. 매번 걸려들고 마니까.” (p.181)


소설은, 음, 샴페인의 톡톡 터지는 기포를 연상시킬만한 신선함은 없다. 달콤하지도 맑거나 밝지도 않다. 그렇다고 술꾼의 어두움으로 진입하는 것도 아니다. 캐릭터들도 사건도 시간의 흐름도 어중되다. 그러니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벌어지는 사건도 그저 급작스럽게 다가올 뿐이다. 샴페인의 내용물을 모두 마시고 난 다음인데, 그제서야 펑, 하고 다시 병이 개봉된 것처럼 난데없다.



아멜리 노통브 Amélie Nothomb / 이상해 역 / 샴페인 친구 (Pétronille) / 열린책들 / 187쪽 / 20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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