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출간되지 않은, 앞으로도 그러할 원고를 보관하는 도서관의 나와 바
소설 속의 도서관은 ‘매력적이고 미국적이며 시의적절하고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원고를 받아서 보관한다. 사람들은 어떤 주제로든 어떤 형식으로든 어떤 장르이든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쓴 글을 이 도서관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시간도 상관없다. 나는 도서관에서 살고 새벽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도서관의 벨을 누르는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맞이한다. 다만 이 도서관은 이미 출간된 책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빌려주지도 않는다.
“놀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어깨 정도까지 내려온 길고 검은 머리칼 외에도 그녀에게는 어딘지 특별한 데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는 완벽한 미궁과도 같아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p.43)
나는 이 도서관의 사서이고, 어느 날 곧 스무 살이 될 열 아홉 살의 바이다가 찾아온다. 다른 방문자들과 같은 목적에서였다. 그녀는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몸, ‘섬세하고 완벽한’ 얼굴과 ‘환상적으로 풍만’한 육체 그러니까 ‘놀랄 만큼’ 가는 허리와 ‘성숙의 극치’인 가슴, ‘기품 있는 다리’ 위에 있는 ‘풍만한 엉덩이’로 이루어진 자신의 몸에 대해 쓴 글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자신의 것 같지 않은 이 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내 앞에서 울기 시작한다.
“그녀는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곧장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았는데, 마치 그녀의 몸이 성이고 그 안에 공주가 살고 있는 듯이 그녀의 육체 안의 누군가가 나를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p.45)
나는 바이다의 책을 받아들이고, 곧이어 바이다도 도서관에 받아들인다. 이제 바이다는 나와 함께 도서관에서 지낸다. 나는 수줍게 바이다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바이다는 따로 집이 있지만 도서관에서 사서인 나와 함께 지낸다. 여러 개의 대학을 옮겨 다녔고 지금은 조그만 연구소의 기사인 그녀는 나와 섹스를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또 도서관에 책이 들어오는 동안 도서관의 안쪽에 있는 나의 집(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 지낸다.
“그녀는 책상 뒤에서 나와 숨 쉴 틈도 없이 내게로 다가와 오랜 키스를 했다. 그녀의 어색함은 작년 어느 저녁 늦게 처음 도서관에 왔을 때보다 80퍼센트 정도가 줄었다... 나머지 20퍼센트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p.83)
그리고 바이다는 임신을 하게 된다. 나는 도서관에 들어온 책들이 도서관을 떠나면 지내게 되는 지하저장소, 그 지하저장소에서 근무하는 포스터에게 연락을 한다. 포스터는 임신중절이 가능한 병원을 알고 있다. 포스터는 지하저장소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온다. 포스터는 내게 돈을 빌려 주고, 멕시코 티후아나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준다. 공항까지 갈 벤을 빌려주고, 바이다가 그 벤을 운전해 공항을 향한다. 도서관은 잠시 포스터가 맡아줄 것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어쩌면’이 있고 사람은 그보다 더 수가 적은지도 모른다.” (pp.217~218)
나와 바이다는 LA 공항에서 샌디에이고 공항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멕시코로 여행한다. 병원에 도착하고 의사와 소년과 소녀가 있는 그곳에서 중절 수술을 한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포스터는 도서관 바깥에 있다. 도서관은 낯선 여자가 차지하고 있다. 나는 쫓겨난 것이고, 포스터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포스터는 이제 바이다의 집으로 간다. 바이다는 내가 도서관 바깥의 세상으로 나갈 것을 바랐다. 그리고 바이다의 집은 세 명이 살기에 충분한 곳이다.
“지금은 5월 말이고, 우리는 지금 버클리에 있는 조그만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집에는 작은 뒤뜰이 있다. 바이다는 샌프란시스코 노스 비치에 있는 상반신 누드 술집에서 일하고 있으며, 내년 가을이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다시 영문학을 시도해볼 것이다. 포스터는 파키스탄에서 온 교환학생과 사귀고 있다. 그녀는 스무 살이고 사회학 전공이다.” (p.231)
도서관의 내부자들이었던 세 사람은 이제 도서관을 나와 현실 세계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수직의 이동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저 그곳에서 이곳으로의 수평 이동일 뿐이다. 도서관 내부와 도서관 외부에 어떤 서열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도서관이 더 좋았던 것도 아니고, 그 바깥이 더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곳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웠지만 지금 여기의 그들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문장들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담백하고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하다, 덕분에 소설 속 캐릭터들까지도...
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 / 김성곤 역 / 임심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The Abortion : An Historical Romance 1966) / 비체 / 237쪽 / 2016 (1970, 1971)
ps1. “브라우티건이 이 소설을 쓸 때 캘리포니아에서는 낙태수술이 불법이었지만, 소설이 출판된 1971년에는 합법화되어서, 부제를 뒤늦게 ‘역사’ 로맨스라고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임신중절수술 금지법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p.237, 해설 중)
ps2. "브라우티건이 창조한 이 특이한 도서관을 기념해 동부의 버몬트 주 벌링턴에는 브라우티건 도서관이 세워졌고, 거기서는 실제로 출판되지 않은 책 원고들만 받아서 보관했다. 브라우티건 도서관은 벌링턴의 플레처 프리 도서관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가, 2010년에는 워싱턴 주 밴쿠버에 위치한 클라크 카운티 역사박물관으로 옮겨갔다.“ (p237, 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