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속성이 사라진 다음에도 불가피한 우리들의 사랑에 대하여...
『라비 부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처음 만난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좀체 묻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다. 마치 그들 관계의 실질적인 이야기들은 적절하거나 생산적인 호기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들 부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진정 골몰해 있는 다음 질문에 답해본 일이 없다. “한동안 결혼 생활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p.18)
첫눈에 반하다, 라는 말을 앞에 두고 내가 그렇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혹은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일종의 속임수이다, 라고 말을 주고 받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하여 말한다. 나 또한 오래 전 사랑에 대해 말하곤 하였다. 나는 사랑은 언제나 ing 현재진행형일 뿐 그것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료형이 된다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사랑이 가지는 ‘낭만’이라는 (어쩌면 학습된) 속성에 집착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p.27)
알랭 드 보통의 오래전 책,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이후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나온),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과 같은 소설을 읽으며 사랑 혹은 연애가 가지는 ‘낭만’의 속성을 쿨 하고 위트 있게 (비틀린 채로) 학습한 적이 있다. 알랭 드 보통도 나이가 들었고, 독자인 나도 나이가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이제 사랑이 가지는 낭만적 속성에 메스를 들이댄다.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누군가를 우리보다 어리게 여기는 것을 윗사람 행세로 보는 생각이 만연한 탓에 우리는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그리고 용서해주는-것이 가끔은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pp.90~91)
알랭 드 보통이 그것을 그러니까 사랑을 나아가 사랑의 낭만적 속성을 해부하는 방식은 최고의 에세이스트답다. 소설은 라비와 커스틴이 만나서 연애를 시작하고 무수한 섹스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외도를 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 대하여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일종의 잠언으로 해설한다. 우리는 두 사람의 사랑과 그 이후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사랑에 대한 잠언들을 읽게도 된다.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p.280)
에세이들은 소설의 중간중간 고딕체로 등장한다. 소설과 고딕체의 잠언은 함께 진행한다. ‘낭만주의’라는 첫 번째 챕터 이후 ‘그 후로 오래오래’라는 두 번째 챕터가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이어서 ‘아이들’과 ‘외도’라는 챕터가 나온다. 낭만적인 사랑의 시작 이후 우리들의 사랑들에 끼어드는 대표적인 요소들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는 ‘낭만주의를 넘어서’이다.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은 철저히 직관에 반한다. 우리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대체로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발을 못 맞추는 건 나머지 사람들이라고...... 그렇지만 성숙은 자신의 광기를 감지하고, 적절한 때에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만일 수시로 자신이란 사람에 대해 당황스러워지지 않는다면 자기 이해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pp.280~281)
생각해보니 알랭 드 보통은 물론 재미있지만 일종의 계몽주의자이기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냉철하게 분석하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가 당도해 있는 세계를 분석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기능 가능한 말의 장치들을 부착해왔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인 생활에서 촉수를 떼어낸 적은 없다. 그의 말과 생각이 기발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을 (혹은 눈치 챘음에도 눈치 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였던 것을) 그는 눈치 챘고, 그것을 화려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 많은 경우 별거와 이혼이 불가피해 보이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우리를 자주 잘못 인도하는 미적 매체들이 부과한 기대에 따라 우리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못은 삶이 아닌 예술에 있다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 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p.284)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 김한영 역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 은행나무 / 298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