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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조너선 캐럴 《나무바다 건너기》

나의 불안증을 상상의 세계의 것으로 전락시킬만한...

  최근 직장 동료와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눴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불안 증세가 나타나 잠을 설치고는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라고 동료에게 말하였다. 나와 크게 나이차가 나지 않는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실은 자기 자신도 그런 불안 증세를 느끼곤 한다, 며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불안 증세의 근원은 함구하였고, 우리의 젊은 날에 대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대화에 추가했을 뿐이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보며, 멍청하거나 신기하다고는 여겨도 결코 그것이 내 본질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상한 모자나 커다란 양복 차림의 옛날 사진들을 넘겨보며 우리는 이야기한다. 저 때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얼마나 순진했는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오히려 지금은 그때의 능력이 사라지고 없다. 그때는 하늘을 나는 법을 알았고, 숲으로 가거나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오직 그들만이 도마뱀을 볼 수 있고 메워야 할 구멍을 메울 줄 안다.” (p.352)


  나는 지나온 과거를 후회하는 스타일의 사람은 아니다.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타입 또한 아니다. 되도록 현실에 충실하자는 것을 모토로 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지나온 과거를 각색하여 상상하는 것은 좋아한다. 이상하게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그러니까 나의 미래를 떠올려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나의 미래를 충분히 좋은 모습으로 상상할만큼 넉넉한 낙관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삶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매운 수프를 들이켜고, 침대로 가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폴린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미래로 걸어 들어갔다. 올드 버츄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시아보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공기 냄새도 예전으로 돌아갔고 차도 시동이 걸렸다. 조니 페탱글스는 인부들이 강변에 파던 도랑에 빠져서 발목을 삐었다. 수자 기네티는 소도시 시장들의 회의에 참석하러 마을을 비웠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남편인 프레데릭은 이미 떠나간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겨우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새 거처를 마련했다. 가게에서 마주친 그는 나에게, 아내로부터 쫓겨났을지는 몰라도 그동안 정든 마을은 떠나지 않겠노라고 했다.” (pp.56~57)


  《나무바다 건너기》는 크레인스뷰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조너선 캐럴의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책에 실린 표현을 따르다면 ‘크레인스뷰는 땅콩버터 샌드위치’와 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우 배부르고, 매우 미국적이고, 달콤하고, 재미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무바다 건너기》는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벌집에 키스하기》와 등장하는 인물들도 적절히 공유한다. 


  “네. 나무로 된 바다 같은 건 없으니까요. 만약 있다면 말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젓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걸로 해야죠. 숟가락 같은 거요. 아니면 ‘니무로 된 바다sea’가 아니라 ‘나무로 된 C’ 일수도 있어요. 알파벳 있잖아요.” (p.308)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장르를 나눠보려 시도한다면 《나무바다 건너기》는 미스터리 판타지물에 가깝다. 그저(?) 미스터리물이었던 《벌집에 키스하기》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올드 버츄 Old Vertue, 라고 새겨진 네임 텍을 매달고 나타나는 개는 다리가 세 개이고 눈이 하나이며 곧바로 죽지만 또한 또다른 장소에서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도 놀랄 필요 없다. 


  “낮잠을 자면 넌 어디로 가냐? 밤에 자면? 그런 비슷한 곳이야. 나도 잘 몰라. 정확히 여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곳도 아니지. 내 생각에 한 사람의 현재와 과거는 서로 뒤엉켜 있는 것 같아. 같은 방에 있지 않을 뿐이지. 같은 집에는 있지만 같은 방에는 없어.” (p.72)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가관이어서 어린 내가 지금의 내 앞에 나타나고 지금의 나는 나이든 나를 향해 여행한다. 그렇다고 시간 여행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수순들이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고, 작가는 그것을 매우 거친 스케치의 형태로 보여준다. 그리고 독서의 와중에, 너무나도 분명히 현실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나의 불안 증세가 불현듯 상상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락한다.



조너선 캐럴 Jonathan Carroll / 최내현 역 / 나무바다 건너기 (The Wooden Sea) / 북스피어 / 374쪽 / 200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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