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동화가 바스러져 흔적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통치
1987년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집회 중 (당시 일련의 집회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같은 해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문이었다. 박종철은 그렇게 죽어서 열사가 되었다.) 전경이 쏜 최류탄에 (우리는 그것을 직격탄이라고 불렀다. 허공으로 쏘아야만 하는 그것은 때때로 우리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다 다음 달인 7월 5일 사망하였다. 이한열 또한 열사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 어떤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때는, 그것이 죽어 갈 때가 아닐까. 희미해져 갈 때, 변질되어 갈 때, 파괴되어 갈 때, 소멸되어 갈 때.” (p.33)
소설은 그날의 시위 현장에서 이한열과 함께 했던 그의 운동화 (그날 그의 운동화 한짝은 그가 병원에 실려간 뒤 시위 현장에 있던 한 여학생이 주워, 병원에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하였다. 신발이 있어야 집에 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 여학생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집으로 돌아기지 못했다), L의 운동화의 복원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1987년으로부터 삼십 여 년이 흐른 지금 L의 운동화는 바스러져 사라질 지경이다.
“L의 운동화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물질이다.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폴리에스터우레탄, PVA, 나일론 등이다. 그런데 나는 폴리에스터우레탄이라는 물질적 요소보다, 빗물질적인 요소가 L의 운동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화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분석이 불가능한 그 어떤 고유하고 특정한 요소가...” (p.35)
실제로 이한열의 운동화는 2015년 복원 전문가 김겸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그리고 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6년 소설가 김숨은 L의 운동화를 소설로 복원시키고 있다. 소설 속에서 복원 전문가인 나는 그러나 운동화 복원 의뢰에 곧바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나는 운동화의 복원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운동화라는 물질과 그것이 담고 있는 어떤 비물질적인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L의 운동화를 그대로 두는 것이, 운동화를 신화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L의 운동화는 시위 현장에서가 아니라 보관 과정에서 파손되었다. // L의 운동화가, L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 L을 집어삼켜서는.” (p.110)
운동화의 떨어진 밑창 조각들에 경화제를 주입하고 퍼즐을 맞추듯 그것들을 다시 구성해나가는 작업이 드디어 진행된다. 그러한 가운데 같은 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그녀가, 손가락의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복원가를 그만두어야 했던 그녀가, 다시금 작업대에 앉아 있는 그녀가 등장하여 모두가 알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기울어질 수도 있을 소설의 반대편에 무게를 더하려 애쓴다. '그녀가 장갑을 벗어 놓아두듯 자신의 두 손을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놓는다.‘ 와 같은 그녀의 문장이 애를 쓴다. 균형이 아니라 역동성을 주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역사를 기억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은 구체적인 매개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데, L의 운동화 같은 물건이 그 매개물이 아닌가 싶어요.” (p.135)
유월이 가기 전에 소설을 읽어야 했다. 1987년으로부터 2016년, 삼십 년이라는 시간이 촘촘하게도 흘러갔다. 왜곡되거나 폄훼되는 역사적인 사건들, 그것들의 위태로운 현재를 목도하면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운동화가 그저 바스러지기를, 그렇게 흔적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 정권을 차지하고 있다. ‘L의 운동화’가 가지는 의미가 퇴색되기를, 퇴색되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라는...
김숨 / L의 운동화 / 민음사 / 277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