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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0. 2024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정겹기보다는 어둡고 모호한 술자리들과 함께...

  《안녕 주정뱅이》는 일곱 편의 소설이 실린 작품집이다. 그렇지만 그 일곱 편의 소설 중에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은 없다. 그저 그 소설들에 그야말로 주정뱅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소설들이 우리 일상의 다듬어지지 않은 측면을 고스란히 다루고 있고, 그러다보니 그 안에 흔하게 발견되는 주정뱅이들이 다수 포진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겹다기보다는 어둡고 모호한 술자리들과 함께...


  「봄밤」

  마흔 넘은 친구들의 재혼식에서 만난 수환과 영경은 그 이후로 함께 생활하게 된다. 마흔이 넘어 시작된 동거는 이제 류머티즘 관절염 말기 환자인 수환과 알콜 중독 말기 환자인 영경이 함께 하는 요양원 생활로 바뀌었다. “...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노보드보로프라는 혁명가는, 똘스또이에 따르면, 이지력은 남보다 뛰어나지만 자만심 또한 굉장하여 결국 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까닭인즉, 이지력이 분자라면 자만심은 분모여서 분자가 아무리 크더라도 분모가 그보다 측량할 수 없이 더 크면 분자를 초과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pp.24~25) 이런저런 주변의 나쁜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한 그 혹은 그녀의 나쁜 점이 아주 커다랗게 분모에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끊임없이 좋은 점을 피력함으로써 1이라는 값을 지켜내려 애썼던 커플이라고 기억되어야 하는 수환과 영경의 이야기...


  「삼인행」

  주란과 훈과 규, 세 사람이 떠나는 여행... 주란과 훈은 부부이고 이제 곧 결별을 앞두고 있다니 그렇다 치지만 그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그러니까 이들 부부의 여행은 일종의 이별 여행이면서 무슨 맛집 여행 같기도 한데, 훈은 무엇인지... 그러는 사이 소설을 읽던 나는 그저 이 문장만 멀뚱멀뚱 쳐다본다. “... 창가 중간쯤에 나이 든 마른 여자와 뚱뚱한 젊은 여자 둘이 식탁 한가운데 붉은 흙을 한삽 퍼놓은 듯한 모양의 찜요리를 놓고 먹고 있었다.” (p.71)


  「이모」

  남편인 태우의 이모, 그러니까 나의 시이모에를 통하여 듣는 남편 외가의 이런저런 사연들... “그런데 그게 뭘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 라고 말하는 그 시이모의 한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하였던,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피붙이를 등지고 혼자 살기 시작한, 그리고 이제 췌장암에 걸려 생을 정리해야 했던, 그녀를 살게 한 것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카메라」

  관희의 동생 관주와 연애를 했던 문정은 결국 관주와 헤어졌다. 문정은 관주와의 연애 사실을 관희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p.136) 문정이 무심코 던진 사진 찍고 싶다는 말, 그리고 그날 밤 관주가 들여다보았던 골목, 그리고 바닥에 깔린 튀어나온 돌길의 그 필연들...


  「역광」

  예술인 숙소에서 마주친 위현이라는 남자와 그녀 사이의 어떤 술자리... “저는 저녁에는 산책하지 않습니다... 날이 저물 때면 제 내부에서는 눈앞이 점점 더 어두워지리라는 공포와 마침내 모든 것이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말리라는 환희가 격렬하게 교차합니다. 그럴 때는 아무래도...... 가만히 있는 편이 좋지요.” (p.160) 시력을 잃어가는 위현의 이런저런 말들은 마치, 술 상대인 그녀의 내부에서 나오는 말들과도 같다. 


  「실내화 한 켤레」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p.176) 학창시절을 함께 한 혜련과 선미, 경안은 14년이 지난 후, 그들이 서른두살 무렵 다시 만난다. 그들은 조금씩 바뀌어 있지만 또 고스란히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들이 서로를 향해 들이대는, 많이 흐릿하고 모호한 감정들이 섬세하게도 다뤄지고 있다, 참 찜찜한 감정들인데도...


  「층」

  ‘초추의 양광’을 이야기했던 그녀와 ‘고추의 발광’을 떠올렸던 그는 지금은 헤어졌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을 차례대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보여주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헤어짐의 이유와 그녀가 생각하는 헤어짐의 이유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다. 두 사람 사이의 갭, 아니 그의 층과 그녀의 층이 다른 것이었는지도...



권여선 / 안녕 주정뱅이 / 창비 / 273쪽 / 20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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