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마사쓰구 《9년 전의 기도》

모호하고 희미하고 은밀하게 공유되는 해안가 마을의 삶의 방식...

by 우주에부는바람

일본의 소설가들은 연작소설을 많이 쓰기도 하고 잘 쓰기도 한다. 그런 탓에 각종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연작소설집이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이번 연작 소설집 또한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작이다. 연작소설집은 어떤 인물을 공유하거나 어떤 장소를 공유하거나 어떤 메시지를 공유한다. 그 공유가 아주 강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데, 이번 소설집은 이것들이 희미하고 모호하게, 그러니까 인물과 장소와 메시지가 꽤 은밀하게 공유되고 있다.


「9년 전의 기도」

삼십대 중반의 사나에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캐빈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와 헤어져 해안가 마을인 고향에 내려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 아들은 울 것이다. 그러면 아름다운 천사 속에 묻혀 있던 진짜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천사에게서 나온 것은 갈가리 찢긴 지렁이였다. 짓밟혀 격하게 몸을 뒤트는 지렁이였다. 체액을 흩뿌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친 지렁이였다.” (pp.68~69) 아직 어린 아들 캐빈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는데 종종 발작적인 증세를 보인다. 이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소설에는 과거의 어떤 장면, 그러니까 사나에가 어렸을 때 마을의 나이 많은 언니들과 떠난 독일 여행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그곳에서 사나에는 와타나베에게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사나에와 캐빈의 상황에 덧입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9년 전인 그때 독일의 어느 교회 건물 안에서 함께 올렸던 기도가 9년 후인 지금을 넘나든다.


「바다거북의 밤」

잇페이다와 유마와 도오루는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왔다. 잇페이다는 자신의 엄마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이 여행을 감행했고, 이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다거북 한 마리를 뒤집어 놓았다. “... 세 사람은 여기에 있다. 가슴이 무거워 후웃, 한숨을 내쉬면서 유마가 눈길을 옆으로 돌리는데 벌렁 뒤집어진 바다거북과 눈이 마주쳤다. 바다거북은 도오루와 같은 자세였지만 고통스러워 보였다. 앞발을 몇 번이나 휘저었다. 밀쳐낼 것도 없는데 휘저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간을 끌어올 수도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을 떨쳐낼 수도 없다. 다만 검은 모래처럼 밤하늘이 찢겨나가고 비뚤어진 달이 한층 심하게 비틀어 놓을 따름이었다.” (p.148~149) 잇페이다는 이곳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네 집을 찾으려 하지만 엉뚱한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와 헤어진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고 있을 공간을 찾는 여정은, 여정같지 않게 꽤 정체된 모양으로 진행된다.


「문병」

하나의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아주 좋아서,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 달밤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웃 마을로 차를 몰아갔다. 달빛에 잠긴 폐허는 음침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남긴 공허는 너무도 사소한 것이라 벌레나 개구리 울음소리가 이미 그것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 나고 있었다. 길가에도 빈집 정원에도 풀이 키만큼 자랐다. 풀에 가려진 채 녹슨 도로표지판은 요괴 아니면 우주인처럼 보였다. 밭은 거친 들판으로 바뀌었다. 풀잎이 달빛을 반사하며 은빛으로 빛났다. 도로 옆에서 갑자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뿔은 없었다. 차를 천천히 몰아서 그런지 사슴은 도망치려 하지도 않았다. 클랙슨을 울렸다. 폐허의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 달빛에 메아리치는 듯 소리가 격하게 울렸다. 그 울림에 한순간 세차게 울어대던 벌레와 개구리 울음이 끊어졌다. 그런 소리로 가득 찬 공허를 확 뒤짚어엎고 세계의 살을 도려낸 것 같은 생생한 정적이 한순간 나타났다. 거기서 흘러나온 피인지 달빛인지, 젖은 듯 괴이쩍은 빛을 내뿜는 길을 건너 사슴은 유유히 건너편 풀숲으로 잠겨 들었다.” (p.170) 어린 시절 형으로부터 일삼아 맞아야 했던 도시야는 동네 형인 마코토를 친형보다 더욱 신뢰했다. 하지만 지금 이 히고 마코토는 완전히 망가진 채로 마음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으며 지낸다. 이런 마코토를 나는 여전히 돌본다.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사실 이 마코토는 잇페이다의 아버지이고, 소설 안에서 도시야는 우연히 잇페이다를, 갑자기 악화된 엄마에게 돌아가려는 잇페이다를 자신의 차에 태우게 된다.


「악의 꽃」

<9년 전의 기도>에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나오는 와타나베의 아들 다이코, 그런 다이코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던 노파 치요코가 등장한다.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아끼는 혈육인 오빠의 묘지를 찾아주었던 다이코, 그 다이코는 이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이다. “... 초등학교 복도, 한낮에 아이들이 엎드린 채 안을 엿보던 판자 틈새에서 악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때는 노란 카네이션 비슷한 꽃이었다. 또 어떤 때는 보라색 수국, 또 다른 때는 핑크빛을 띤 하얀 매그놀리아 꽃과 흡사했다. 도감에서만 보았던 열대 정글에서 날 법한 현란하고 힘찬 색채와 형태의 꽃잎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어떤 형상을 하건 어떤 색깔로 나타나건 그 꽃임을 알았다...” (p.221) 치요코는 다이코의 발병이 악의 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던 악의 꽃이 풍기는 나쁜 기운이 다이코에게 옮겨 갔을 것이라고 여긴다.


연작 소설의 구성 방식이 꽤 묘하다고나 할까.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공통된 인자로 와타나베의 아픈 아들 다이코가 있기는 한데, 그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등장하는 이들은 다이코와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다이코의 상황에 대해서는 독자인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병상의 다이코는 마치 이 해안가 마을과 연관된 사람들의 삶을 지긋이 이끄는 것만 같다.



오노 마사쓰구 / 양억관 역 / 9년 전의 기도 (九年前の祈り) / 무소의뿔 / 234쪽 / 20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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