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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 《올 댓 이즈》

특별해도 평범해도 특별하지 않아도 평범하지 않아도, 우리들 각자에게는 그

by 우주에부는바람

《올 댓 이즈》는 2015년 작고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적당한 문장으로 나는 아래의 워싱턴포스트 지의 찬사를 꼽고 싶다.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그저 그렇게 사용되고 말았을, 약간 색다를 수 있지만 너무 독특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일상들이 제임스 설터의 소설에 사용되면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이 되고 만다. (이처럼 전혀 다른 차원에 가장 가까운 다른 작가들로 앨리스 먼로나 줌파 라히리를 꼽을 수도 있겠다.)


“마법같다. 『올 댓 이즈』의 디자인과 어조는 설터가 늘 써왔던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시간 속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가 삶의 종잡을 수 없는 측면에 얼마나 무지한지 애잔한 인상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소설은 플롯으로 끌어가는 소설이 아니다. 남자들은 회사 경비로 런던, 스페인 등을 여행 다니며 먹고 마시고 성관계를 맺고 예술을 탐닉한다. 다른 작가의 손에선 그런 소재들이 정적이고 사소한 양 그려졌겠지만, 『올 댓 이즈』는 그게 곧 사는 거라고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 워싱턴포스트


소설의 주인공은 보먼이다. 소설은 그가 해군 장교로 겪는 (짧게 묘사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들어가고,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여의치 않아 출판사에 취직한다. 그가 남은 생애에 걸쳐 일로 삼는 출판사 편집인으로서의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작가들과 대중적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다양한 출판인들과의 만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니 책에는 출판과 관련한 인물들이 꽤 많이 그리고 자주 등장한다.


“미국 문화에서 소설의 힘은 약해졌다. 점점 그렇게 됐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다.

이전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반복됐다. 그래서 되레 아름다웠다. 영광은 시들었어도 새로운 얼굴은 계속 나타났다. 출판업에 뛰어드는 사람들. 출판은 여전히 우아하게 보였다. 파산한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반짝이는 고운 구두 한 켤레처럼.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 그와 글렌다를 포함한 -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나무에 박혀 있던 못 같았다. 나무가 못을 감사며 자랐다. 이제 그들은 고목古木의 일부고 깊숙이 자리 잡았다.” (p.382)


하지만 《올 댓 이즈》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과 같은 부류의 소설은 아니다. 출판은 그의 직업일 뿐, 그것이 그의 삶에 본질적인 의미에서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우연히 출판사에 취직하여 편집인이 되었을 뿐이고, 그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만남들은 그 상대의 성향이나 그 상대의 직업 등은 바뀌었을지언정 그가 출판업에 종사하지 않았다고 해도 벌어졌을 일들이다.


“... 그녀의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번 주는 저번 주 같고,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그러다 삶의 방향을 잃고 말았다.” (p.164)


그리고 출판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낸 보먼의 생을 다른 면에서 압축하는 네 명의 여성이 있다. 보먼의 유일한 결혼 상대였던 비비언은 그러나 편지로 헤어짐을 통보한 이후 다시는 만나지 않고, 영국에서 만난 유부녀 이니드는 손에 꼽을 정도의 횟수만 만났을 뿐이다. 사십 대에 만난 여인 크리스틴은 그를 배신하였고, 이제 그는 어쩌면 마지막 여인이 될지도 모를 애나를 만났다.


“그는 그와 그녀의 관계에 대해 장담할 수 없었다. 결혼할 나이는 지났다. 황혼에 이르러 감상에 젖은 타협 따위는 원치 않았다. 겪을 만큼 겪었으니까. 그는 한 번 결혼했었다. 순정을 바쳐. 실수였다. 런던에 사는 여자와 불같은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그냥저냥 시들해졌다. 어느 날 밤 운명처럼 그의 생에서 가장 낭만적으로 한 여자를 만나 배신당했다. 그는 사랑을 믿었다. 평생 믿어왔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잘하면 그녀와 이대로 영원히 함께할 가능성도 있었다. 불멸의 예술품처럼. 그는 그녀를 ‘애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애나, 이리 와, 내 옆에 앉아.”(p.420)


그런가하면 소설에는 보먼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보먼의 동료들이나 그가 만난 해외의 출판업자들 혹은 그의 여자들의 부모나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들 또한 종종 등장한다.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이처럼 불쑥 튀어나오거나 그만큼이나 불쑥 사라져버리는 이야기들이 드물지 않다. 우리들의 삶에도 이만큼이나 느닷없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으니 이 또한 우리들 삶의 형태로부터 먼 것은 아니다.


“카렌과 만나면서 베르그렌은 회춘한 기분이 들진 않았지만 꽤 만족했다... 하루는 또 다른 걸 봤다.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카렌과, 그녀가 학창 시절에 사귄 여자 친구가 간단한 수영복만 걸치고 잔디 위에 나란히 엎드려 누워 선탠을 하고 있었다. 둘이 한가롭게 이야기 나누며 이따금 다리를 하나씩 태양 쪽으로 들어올렸다... 문득 저들 옆에 가서 앉고 싶었다. 하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든 말문을 닫을 게 뻔했다. 그는 그 얘깃거리를 추측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날과 다른 몇몇 날에 베르그렌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주로 그의 아내에게 일어났던 일을 직시하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의 지위와 지성과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쉰셋 되던 해에 자살했다. 카렌과 헤어진 해였다.” (p.146)


그렇게 우리는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몇몇 의미 있는 여자들과는 사랑을 하는 보먼을 소설을 만나게 된다. 보먼은 어렸거나 젊었고 나이가 들었고 이제 늙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의 제목인 All That Is 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삶이 품게 되는 일과 사랑 그리고 이런저런 만남과 그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다보면 그래 이게 전부지 우리도,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중얼거리게도 된다. 제아무리 특별해 보여도 특별할 것 없는 삶, 평범하기 그지없어도 평범하기만 한 것으로 치부하기는 힘든 삶, 하지만 어쨌든 우리들에게 부여된 삶이고 우리들 각자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삶, 을 바라보는 노작가의 마지막 시선을 따라 소설을 모두 읽고 났더니 마치 훈수가 없는 훈수를 받은 느낌이다.



제임스 설터 James Salter / 김영준 역 / 올 댓 이즈 (All That Is) / 마음산책 / 428쪽 / 20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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