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을 벌리고 밀어넣은 작가의 환상성 가득한 촉수가 가닿은...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고 그 친구를 믿을만하니 서둘러 읽는다. 남미 붐 문학의 일원으로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역자의 글을 읽으니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 전반부의 소설들을 읽으며 깜짝 놀란다. 현실의 틈바구니로 불쑥 밀어 넣는 비현실이 독자인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르고는 했던 환상문학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러한 문장의 맛을 배가 시킨 것은 번역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남미 소설을 내는 출판사도 운영하는 까페 여름의 선배에게 물었더니 남미 스페인어 번역에 일가견이 있는 번역가라고 이야기해준다) 차분하다 못해 냉담해 보이는 문장이 소설 속의 비현실적인 상황을 우리들 현실의 바로 옆에 있는 것 마냥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하지만 후반부의 소설에 이르러서는 독서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제 실려 있는 소설이 주는 힘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독자인 내가 꽤 피곤한 한 주를 보냈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점거당한 집」
“내가 어떻게 그 집의 구조를 잊을 수 있겠는가. 식당,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는 응접실, 서재 그리고 커다란 침실 세 개가 집 안쪽, 다시 말해서 로드리게스뻬냐 거리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복도에는 떡갈나무로 만든 견고한 문이 달려 있었다...” (p.13) 결혼도 하지 않은 남매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물려 받은 오래된 집에 점점 알 수 없는 존재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매는 조금씩 밀려나고 그 무언가는 결국 집을 점거하고 결국 남매는 집을 버리고 나오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 당신 집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일층과 이층 사이를 지나는 바로 그 순간에 토끼를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속이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가끔 토끼를 토한다고 떠벌리고 다닐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항상 나 혼자 있을 때만 일어나고, 또 흔히들 사소한 사생활을 감추듯이 나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p.23) 빠리로 떠난 여인을 대신해 그 집에서 살게 된 내가 빠리의 여인에게 보낸 편지글의 형식이다. 토끼를 토해내고 그 토끼를 어쩌지 못하여 그 여인의 집에 숨기고, 평소보다 더 자주 토하다보니 토끼가 늘어나고 그 토끼로 인하여 그 여인의 집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냥 숨길 수는 없어서, 이 남자는 지금 편지를 쓰고 있다.
「먼 곳의 여자」
‘먼 곳의 여자’를 이곳에서 느끼고 있는 알리나 레예스의 일기이다. “때때로 나는 그 여자가 추워하고, 고생하고,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여자를 미워하고, 그 여자를 땅바닥에 쓰러뜨리는 손을 미워하고, 그 손만큼 그 여자를 미워하는 것뿐이다. 아니, 그 여자를 더 미워한다. 맞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나인데, 맞기 때문이다...” (p.39) 이러한 느낌을 간직한 채 결혼을 하게 된 나는 그 여자가 있는 곳인 헝가리의 부다뻬스뜨로 신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여자가 만나고 헤어진다.
「시내버스」
묘지를 통과하는 시내버스를 탄 끌라라는 같은 버스에 탄 승객들 그리고 버스기사와 그 조수의 따가운 눈총을 못견뎌한다. 다른 승객들은 꽃다발을 쥐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그리고 마침 다른 정거장에서 끌라라처럼 꽃다발을 들고 있지 않은 남자 승객이 한 명 탄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총을 함께 공유하고 그 시내버스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한다.
「맞물린 공원」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소설이다. 세 페이지에 걸쳐 있지만 실제로는 두 페이지 정도인 엽편 소설이다. 소설의 안과 밖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을 읽고 있는 남자의 뒤편으로 등장하게 되는 소설 속의 인물이라니...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키클라데스 제도의 한 섬을 함께 여행했던 소모사와 모랑과 떼레즈가 발견하고 그곳에서 가지고 온 조각상... 어쩌면 그 조각상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떤 광기가 발현되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는 소설이다.
「아숄로뜰」
‘암비스토마속 양서류의 일종으로 아가미가 달린 유생 형태의 동물’(찾아보니 도롱뇽)인 아숄로뜰을 우연히 빠리 식물원의 수족관에서 본 후에 빠져들게 된 나, “... 수족관 밖에서 내 얼굴이 다시 유리로 다가왔고, 나는 아숄로뜰을 이해하려는 결의로 굳게 다물어진 내 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아숄로뜰이었다. 그 순간 어떤 이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족관 바깥에 있었고, 그의 생각은 수족관 밖의 생각이었다. 그를 알던 내가, 아니 그였던 내가 아숄로뜰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세계에 있었다. 나는 아숄로뜰의 몸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순간에 깨달았다) 공포에 떨었다. 인간의 사고를 가진 채 아숄로뜰이 되어버린 나는, 아숄로뜰의 몸 안에 산 채로 매장당한 나는 무감각한 아숄로뜰 사이에서 명료한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였다. 어떤 발이 내 얼굴을 스치려는 순간 가까스로 비껴나면서 바로 옆에서 나를 쳐다보는 아숄로뜰을 발견했을 때, 그 아숄로뜰 역시 알고 있다는 것을, 의사소통할 방법은 없었으나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의사소통할 방법은 없었으나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 아숄로뜰의 생각 안에 있었다. 바꿔말해서, 우리 모두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나 표현 능력이 없었다...” (p95) 는 결국 아숄로뜰이 되고 마는 것일까...
「드러누운 밤」
남미식의 호접몽이라고 불러야 할까...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 그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깨어나지 않을 것이며, 지금 깨어 있ㅇ며, 경이로운 꿈은 바로 그 꿈, 꿈이란 게 그러하듯이, 터무니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꿈에서 놀라운 도시의 이상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p.109) 어느 순간 꿈이라고 생각되던 원시 부족의 사냥터과 현실이라고 생각하던 현대의 도시가 스르르 자리를 바꾸게 되는데, 그게 참 절묘하다.
「어머니의 편지」
형 니꼬가 죽고 난 후 형과 결혼할 뻔 한 여인 라우라와 함께 빠리로 온 루이스는 종종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착한 어머니의 편지에서 형인 니꼬의 흔적을 발견한다. 니꼬가 살아 있는 것을 암시하는 편지 그리고 연이어 니꼬가 빠리로 오게 될 것을 암시하는 편지를 받은 루이스 그리고 라우라는 당황한다. 그리고 라우라는 니꼬가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플랫폼으로 나가고, 루이스는 그런 라우라를 멀찌감치서 따라간다.
「악마의 침」
“미첼의 병은 문학이다.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것이다. 미첼은 예외적인 존재, 탈인간적인 존재, 항상 혐오스럽지만은 않은 괴물을 즐겨 상상한다...” (p.152) 소년과 여자 그리고 미첼 혹은 사진과 문학... ‘가을철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거미줄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성모 마리아의 실’ 그리고 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인 ‘악마의 침’...
「비밀 병기」
미셀과 삐에르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되던 소설은 어느 순간 실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과 같은 두사람, 롤랑과 바베뜨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뒤바뀐다. ‘저 두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으며, 시간이라는 방파제로 보호받고 있다’ (p.186) 와 같은 문장, 그리고 “세계는 손에 쥐고 있는 고무 순잡이로 조종된다.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주변의 나무는 한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되어 대로변에 펼쳐지고, 손잡이를 조금 놓으면 그 거대한 나무는 수많은 미루나무로 해체되어 디로 밀려나고, 고압선 철탑이 하나씩 천천히 지나간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을 못한다. 모든 것은 기계이고, 기계에 붙은 몸이고, 망각처럼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다...” (p.193) 와 같은 문장들 앞에서 독자인 나는 기계처럼 멀뚱히 멈춘다.
「남부고속도로」
빠리로 들어오는 남부고속도로의 채증이 그렇게 심할까... 시사주간지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소설은 그러니까 이 고속도로의 채증이 심하여 그곳에 갇혀버린 일군의 사람들의 며칠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근처 차의 사람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고 지도자를 뽑아서 그들이 물과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야 하고, 그 안에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죽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하는 그 며칠의 이야기이다.
「정오의 섬」
항공기에서 기내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마리니가 로마-테헤란 노선의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면서만 바라보던 시로스 섬... 결국 마리니는 휴가를 얻어 직접 이 섬을 방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때 그 섬의 근처로 비행기가 추락한다.
「불 중의 불」
아마도 로마 시대, 총독은 아내인 이레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검투사 마르코의 검투사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마르코의 상대는 아주 강하고 그는 오늘 죽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 롤랑은 잔과 사귀는 사이이지만 잔의 친구인 쏘니아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도 하다. 잔은 전화로 쏘니아가 롤랑의 집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 로마의 경기장 위로 불똥이 튀어 날아오르고 (화산 폭발이리라), 현재의 롤랑과 쏘니아가 머물고 있는 건물에서는 불길이 피어오른다.
「추적자」
‘알토색소폰 연주자이자 비밥 재즈의 창시자이며, 즉흥연주의 대가’인 찰리 파커를 추모하며 쓴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찰리 파커는 조니,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그는 데데라는 여인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이야기의 서술자인 브루노는 얼마전 조니에 대한 책을 낸 바 있는 음악 평론가이다. “... 조니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끊임없이 창작한다. 창작의 즐거움은 끝맺음에 있다기보다는 반복적인 탐구에 있다...” (p.288) 라거나 “... 조니를 희생자라고, 쫓기는 자라고 믿고 있으며, 나 또한 전기에서 그렇게 설명한 바 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니는 추적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적하고 있으며, 곡절 많은 인생도 사냥꾼의 고난이지 쫓기는 동물의 고난이 아니다. 조니가 추적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추적하고 있다...” (p.301) 라고 설명되는 조니, 재주 연주자 찰리 파커에 대한 일종의 헌사인 소설이다.
번역가인 박병규는 작품 해설에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소설 특성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서술 간극과 모호성’, ‘현실과 비현실의 혼융’, ‘수직적 깊이에서 수평적 확장으로’가 그 특성들이다. 우리들 일상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 그 사건들의 틈바구니로 밀어 넣은 작가의 어떤 촉수가 가닿은 환상성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들이다. 어떤 원형이라고 할 소설들의 집합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훌리오 꼬르따사르 / 박병규 역 / 드러누운 밤 (Lanoche boca arriba) / 창비 / 380쪽 / 2015 (1951, 1956, 1958,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