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 《꿈의 궁전》

꿈을 이용해 자행되는 전제 정치의 '왜'가 존재하지 않는 진원지...

by 우주에부는바람

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아주 많지만 그 중 하나만 골라보자면 이렇다. 직업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경희 중학교에 다닐 무렵 국어 선생님은 우리 까까머리 학생들에게 꿈 일기를 써볼 것을 권유하였다. 꿈은 쉽게 증발하는 성질이 있으니 일어나자마자 기록해야 하고, 매일 매일 기록해야 하며,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이 꾸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언질과 함께...


“예로부터 세계는 국가와 그 통치자의 운명을 예측하는 도구로서 꿈을 아주 중요하게 인지하고 있다네. 자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졌던 델포이의 신탁과 로마, 아시리아, 페르시아, 몽골 등 세계 곳곳의 유명한 예언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겠지... 이런 유구한 전통은 나름의 중요성을 갖고 있지만, 우리 타비르 사라일과 비교하자면 새 발의 피지. 우리 제국은 인류 역사에서 꿈 해석을 고도로 제도화한 최초의 나라라네.” (p.26)


소설에서는 명확한 시대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시간은 과거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으며 또는 미래일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오스만 트루크 제국으로 술탄에 의한 전제 정치가 이뤄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꿈은 일종의 신탁과 같은 것으로, 그들은 꿈을 이용한 신정을 펼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설은 꿈에 의한 신정 국가의 꽤 비밀스러운 꿈의 궁전, 꿈을 관리하는 관청인 타비르 사라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청년 마르크 알렘에 의해 진행된다.


“마르크 알렘은 외삼촌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공할 힘은 눈에 보이는 것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방금 한 외삼촌의 말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그는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러나 와지르는 계속해서 타비르 자체에서는 어떤 지침도 나오지 않았으며 나올 수도 없다고 얘기했다. 요컨대 타비르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타비르에서 아이디어만 제시되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타비르의 메커니즘이 즉석에서 그 아이디어에 가공할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p.179)


주인공인 마르크 알렘은 일종의 낙하산으로 이곳 꿈의 궁전에 들어갔다. 그의 외가는 이 제국에서는 꽤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 쿠프릴리 가문으로 예전만은 못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가문은 때때로 어떠한 예지력을 갖고 있는 꿈의 출현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고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꿈의 예지력이라기 보다는 꿈의 해석력에 의한 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 맙소사. 자넨 여기서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나? 꿈의 궁전 청사 안에서 말이야. 이곳은 원래 ‘왜’라는 말이 없는 곳이야!” (pp.218~219)


이곳에서 모든 제국의 일원인 이들은 자신이 꾼 꿈을 나라에 보고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리고 그 꿈들은 마르크 알렘이 일하고 있는 꿈의 궁전 타비르 사라일로 모아지게 되며, 이곳에서는 제국의 영토 곳곳으로부터 수집된 꿈을 분류하고 해석하여 그중 중요한 꿈을 술탄에게 보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보다는 그 꿈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


“... 이 모든 일은 베일에 싸여 있어. 이 나라의 기반을 이루는 저 깊은 심연 속에선 은밀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고, 서로 일격을 주고받은 것 같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그 표면의 울림 정도일 뿐이지. 그건 진원을 저 깊숙한 땅속에 두고 일어나는 지진과 같은 거야. 그러니까 밤사이 앙숙인 두 집단 사이에, 국가의 핵심적 위치에서 서로 견제하고 있던 두 세력이라고 해도 좋겠군. 끔찍한 충돌이 일어난 거야 수도 전체가 술렁이는데도 그 구체적 진상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 더구나 정작 베일에 싸인 그 사건이 일어난 진원지에 있는 우리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야.” (p.272)


아직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전제 정치의 그늘, 그 중에서도 자신의 조국인 알바니아의 잘 알려지지 않은 깊은 어두움을 전달하려고 한 것일까... 제국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발생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사건의 허상이고, 바로 이 제국의 정치를 드러내기 위하여 꿈은 얼마나 재기발랄하면서도 진중한 소재가 되고 있는지...



이스마일 카다레 / 꿈의 궁전 (Le Palais des Rêves) / 문학동네 / 302쪽 / 2004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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