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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토우의 집》

어린 두 동심의 어깨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역사적 현실...

by 우주에부는바람

바위 세 덩어리가 솟아 있는 삼악산의 경사가 완만한 남쪽면, 그 아래 흐르는 너른 개천을 복개하여 만든 동네인 삼악동, 그 삼악동의 부자들이 사는 아랫동네와 가난한 자들이 모여사는 윗동네의 중간에 위치한, ‘소유자와 거주자의 관계’가 복잡해지는 삼악동 중턱에 위치한 우물집, 그 우물집의 주인집인 순분과 순분의 아들 은철 그리고 그 우물집에 세들어 살게 된 새댁과 새댁의 딸 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소설이다.


“뚜벅이할배의 걸음은 뚜벅뚜벅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인간의 관절이 아니라 기계의 관절이 행하는 운동처럼 보이는 그의 걸음은, 이미 통과해버린 허공에마저 그 흔적을 뚜벅뚜벅 남기는, 그래서 보는 사람의 뇌리에도 그 독특한 움직임이 고스란히 각인되는,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걸음이었다...” (p.63)


하지만 이들 이외에도 난쟁이 식모, 운문원의 임보살, 보험여자 성계희, 사우디집 퇴은숙, 통장집, 뚜벅이할배와 괴상한 씨를 비롯해 다양한 소시민들이 소설을 거들고 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얼핏 떠오르기도 하는데 시대적으로는 그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양귀자의 소설이 그저 소시민들의 일상에 치중하고 있다면 이 소설은 좀더 큰 역사의 줄기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 어둠이 내리고 밤이 찾아오면 우물집에는 고통만 흘러넘쳤다. 순분은 무섭고 또 무서웠다...” (p.315)


그 역사의 줄기는 인혁당 재건위 시건 (2차 인혁당 사건)이다. 사형을 선고하고 형선고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하였고, 이후 중앙정보부에 의한 조작 사건으로 판명이 난 사건이 소설에 맞닿아 있다. 이 거시적인 역사의 아픈 상처가 곧바로 삼악동 중턱의 우물집이라는 미시적인 일상으로 이어지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한껏 침울하다. 우물집 주인집 아들들인 은철과 금철, 우물집에 세들어 사는 새댁의 딸들인 원과 영은 그렇게 자신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로 역사의 한 귀퉁이에 무게를 싣게 된다.


“... 달리면 달릴수록 그의 마음은 심하게 베었지만, 파란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로 항상 질척거리는 창자처럼 깊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은철은 온통 신발에 진흙을 튕기며 달리고 또 달려 나갔다. 아 시시하다, 시시해. 칫칫!” (pp.175~176)


토우, 주술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 흙으로 만든 인형은 소설 속에서는 일곱 살 동갑내기인 원과 은철이 우물 곁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어린 저주를 품어보는 상상 속의 오브제로 등장하거나 원의 등에 업힌 인형 동생 희로 이미지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무릎을 다친 은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원의 아버지와 정신을 놓아버린 새댁으로 실체를 띠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 토우는 이들이 살아가는 내내 겪게 될지 모를 무덤 속 같은 트라우마의 원형인 것만 같다.


“...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p.276)


작가 특유의 속도감 있고 시원시원한 문장들은 여전히 작가의 소설의 장점이 되고 있다. 무겁기 그지 없는 소재를 어린 원과 은철의 동심에 얹음으로써 그 역사적 무게감을 조금은 덜어 우리에게 전달하려 한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이다. 다만 그러기엔, 이 어린 소년과 소녀의 어깨가 짊어지기에는, 이 역사적 사건의 무게가 너무 커 보인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러한 문학적 시도들을 통해 우리들은 환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권여선 / 토우의 집 / 자음과모음 / 334쪽 / 20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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