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 쇼펜하우어의 사유를 따라.
"혼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자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감정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그에게 있어, 외로움은 결핍의 상태였고, 고독은 충만의 상태였다.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자각할 때, 혹은 타인과의 연결이 단절되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외로움을 경험한다.
이 감정은 불안과 허무를 동반하며, 인간이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본능적 욕망의 발로이기도하다.
반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독은 내면을 향한 집중이다. 이는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과 마주하는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외로움이 타인의 부재에 고통받는 상태라면, 고독은 타인의 부재를 오히려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환영하는 자세다.
그에게 진정한 철학자는 고독 속에서만 사유의 깊이를 얻을 수 있으며, 예술가 역시 창조의 공간으로서 고독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현대 사회는 '연결'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연락 중이며, 디지털 공간 속 "함께 있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이때 쇼펜하우어의 고독은 현대인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를 얻는가? 혹은, 고요한 고독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되는 경험을 할 수는 있는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지적으로 우수할수록 고독을 더 많이 즐긴다." 이는 오만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 존재가 되기 위한 통찰이다.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독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쇼펜하우어가 말한 철학적 인간의 조건이다.
외로움은 피해야 할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고독은, 삶의 중심을 자기 안에서 채우기 위한 '기회' 일지도 모른다.
오늘, 스마트폰을 끄고 고요한 방 안에 혼자 앉아보자. 어쩌면 그 침묵 속에서, 당신은 외로움을 지나 고독의 안온함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창한 봄날!
'노들섬'을 산책하면서 쇼펜하우어가 주장했던 '외로움'과 '고독' 문구를 잠시 소환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