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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 대한제국"에서 배우자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2021년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틀 후에는 달력의 마지막 장을 떼어 내야 한다. 세월의 흐름 속도가 나이에 견준다고 하지만 정말 빠른 것 같다. '탄핵 정국'을 등에 업고 등장한 정권이 벌써 퇴임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혔는데 임기가 끝나가고 있는 지금 자신의 구상이 얼마나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무려 수개월 동안 소위 '조국 사태'로 수많은 국민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내몬 것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나라인가? 하는 웃픈 얘기마저 회자되고 있다. 왜? 국민들이 한동안 휴일과 주말을 반납하고 광장으로 나와야 했는지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 우리나라 형편을 일본에 '국권 침탈' 당했던 암울한 시기로 비교하는 지식인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해서,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한 데 대한 반성 겸 "왜, 대한제국이 망했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대한제국의 멸망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을 꼽는다면 고종과 왕비 민비의 외교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난세를 돌파할 능력이 없으면 줄이라도 잘 서야 생존할 수 있는 게 '외교 및 동맹의 기본 원칙'인데 그러지도 못한 것 같다.


고종과 민비는 세계사의 패권 세력이 아닌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과 집요하게 동맹을 맺으려고 시도하다가 대세를 그르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외교 부분에서 국왕 고종은 일종의 허수아비였고 왕비인 민비가 1884년 중반부터 대외 문제를 좌우하다시피 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일본 공사 미우라는 "민비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재능을 갖춘 호걸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면서 "사실상의 조선 국왕은 민비"라고 그의 회고록에서 평가하고 있다.


열강과의 외교 관계는 고종이 나서서 추진했지만 실상은 민비의 의중이 조선 정부를 대표하는 입장이었다고 본다. 외세는 민비와 대원군의 갈등을 이용했고,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민비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한동안 핫한 이슈의 중심에 서 있던 이영훈 박사는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오랫동안 닫힌 가운데 전제 정치에 폭압을 받아 대다수 백성이 노예근성에 물들고 정신문화가 타락하여 거짓말을 하는 악습이 횡행하고, 관리는 오로지 임금에 순종하는 것만이 충성인 줄 아는데, 임금이 비겁하고 어리석어서 나라가 망했다"라고 그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에서 주장하고 있다.


또한 역사학자 최남선은 "우리 조선은 망하는 데도 실패했다"며 통곡했다고 한다. 즉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알지 못하여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다.


조선 왕조를 망친 주범을 꼽자면 누가 뭐래도 고종이 아닐까 싶다. 그는 왕조를 자신의 가보로 간주한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임금이었으며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어 민비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된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음에도 제대로 된 정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러시아 공관에 숨어드는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고종이 아관 파천한 그 길을 '고종의 길'로 기념하겠다며 한바탕 쇼를 벌이기도 했다.


고종이 일본에 왕조를 팔아넘긴 덕분에 그의 일족은 일본 황실의 왕공족 신분으로 편입되어 호위 호식한 것으로 이해된다. 종료 사직의 제사를 1945년까지 행할 수 있도록 일본의 혜택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 백성은 망국노의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을사오적 중 첫 번째로 꼽고 있는 이완용은 매국 행위로 이름을 더럽힌 인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을사조약의 책임을 온통 이완용에게 뒤집어 씌우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사람은 바로 고종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상적인 외교 절차를 무시하고 고종에게 조약 체결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항할 사람은 바로 국왕인 고종인데 그는 몸이 아프다는 걸 핑계로 뒤로 숨었으나 내각 대신들이 끝내 반대하자 마침내 이토가 고종과 담판을 시도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마침내 '조약 체결'의 어명을 내린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국왕이 국가의 안위는 내팽개쳐 놓고 자기만 살겠다고 일관 파천, 미관 파천, 아관파천, 영관 파천을 시도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다.


얼마나 통치 능력이 한심했으면 일본 수상 이토 히로부미가 1895년 주일 영국 공사 어니스트 샤토 우와의 대담에서 "조선의 독립은 현실성이 없고 조선은 주변에 가장 강력한 국가에 병합하든가 보호 아래 두어야 한다"라고 했을까 싶다.


정리하면, 조선의 망국 암주는 바로 고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개명 군주로 둔갑시켜 그가 개혁을 열심히 추진하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좌절됐다는 식의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미사여구는 역사를 후퇴시킨다는 교훈을 준다. 지도자의 무능으로 백성을 지옥의 세계로 몰아넣고, 몰아넣은 놈들만 탓하는 민족에게 희망은 없다.


요즘에는 재개발(건축)조합, 아파트입주자회의 같은 조그만 단체까지 완장만 차면 '봉사'라는 단어는 뒷전이고 자기 이익 챙기는 데 혈안돼 있다는 암울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따라서 크건 작건 조직의 리더는 대한제국이 망하는 과정에서 -특히 지도자의 무능과 부패가-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지 반드시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인은 서로 대등한 프랑스와 독일 관계로 보는 반면, 일본인은 격차가 심한 영국과 아일랜드 관계로 본다"는 흥미 있는 조사가 있다는 걸 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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