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넘치게 되면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지식은 본래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배움 앞에 고개를 숙이고, 타인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성찰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간혹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처럼 많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겸손은 사라지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더 많아졌고, 강의는 넘쳐나며, 클릭 한 번이면 어떤 주제든 요약해서 설명해 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태도는 거칠고, 목소리는 크고,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손짓은 멈출 줄을 모른다. 왜 그런 걸까?


첫째, "많이 안다"는 착각이 만들어낸 무지


이 시대의 역설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많이 안다고 생각할수록, 진짜 모르는 것에는 눈을 감는다.


약간의 정보로 전체를 안다고 착각하고, 단편적 지식을 근거로 타인을 재단하며,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한 철학자는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 비로소 인간다워진다"라고 했다. 부끄러움은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보가 넘치는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거의 완성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든다.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겸손을 내려놓고 타인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지식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지식은 원래 '이해'를 위한 도구지만, 권위를 과시하고 타인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지식으로 말끝마다 상대를 무시하고, 누군가는 자기 분야 밖의 이야기를 '비논리적'이라고 단정 지으며, 누군가는 토론의 장을 "지적 싸움"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럴수록 지식은 빛을 잃고, 사람 사이에는 고요한 벽이 생긴다. 지식은 무기일 수 없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쓰일 때, 지식은 더 이상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교양의 탈을 쓴 '권력'일뿐이다.


셋째, "부끄러움"은 배움의 문을 여는 열쇠


진짜 배움은 언제 시작되는가? 어떤 질문 앞에서 침묵하게 될 때, 누군가의 말에 감동해서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때, 그리고 "왜 이걸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작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 시작된다.


부끄러움은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인식의 표시다. 내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세계에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진동이다.


지식이 쌓일수록 오히려 더 자주 부끄러워져야 한다.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더 많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 넘치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


지식이 넘쳐도 품격이 없을 수 있고, 논리가 정확해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그 지식을 다루는 태도다.


우리는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말끝을 흐릴 수 있는 여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무지 앞에서 교만이 아니라 공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겸손한 지성, 아름다움의 시작


"지식이 넘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 말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진짜 지성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이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말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논리가 정교할수록, 말투는 부드러워야 하며, 생각이 깊을수록,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더 따뜻해야 한다.


그럴 때, 지식은 삶을 위한 도구가 되고, 인간다움은 지식 위에 깃든다.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는 사실 앞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존재일 때 가장 지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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