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공존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 경계가 아닌 공생의 철학,

우리는 종종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눈다. 성과 속, 즉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성은 고귀하고 숭고하는 반면, 속은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


성은 절제와 규범을, 속은 욕망과 자유를 상징한다. 오랫동안 이 둘은 대립하는 개념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이분법적인 구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성과 속은 단절이 아닌 공존의 관계로 새롭게 읽혀야 한다.


첫째, 이분법의 한계


종교, 철학, 예술은 종종 성스러움을 지향해 왔다. 절제된 욕망, 고결한 의도, 순수한 목적, 반대로 상업, 정치, 대중문화는 속됨의 대명사처럼 다뤄져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은 인간 삶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축소하는 단순화일 뿐이다. 인간은 본래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을 지향하면서도 속을 필요로 하고,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성을 갈망한다.


둘째, 공존의 가능성


성과 속이 공존하는 공간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절에서 차 한 잔 마시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 명상을 통해 자기 계발을 추구하는 사람, 성당에서 기도한 뒤 카페에서 수다를 나누는 일상.


이것은 성의 타락이 아니라, 속의 승화다. 성은 속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속은 성을 통해 깊이를 얻는다.


예술 또한 좋은 예다. 종교화는 숭고한 메시지를 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의 미감과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대중문화 속에서도 성스러운 감정 -희생, 사랑, 경외- 은 드러난다. 이처럼 성과 속은 구분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며, 인간은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 든다.


셋째, 공존의 윤리


중요한 것은 이 공존이 무분별한 혼합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균형 위에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성이 속을 압박하지 않고, 속이 성을 소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경건한 삶"이나 "자유로운 삶"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삶을 조여 조화롭게 엮어내는 "지혜로운 삶"의 문제다.


결과적으로, 성은 속을 통해 실현되고, 속은 성을 통해 정화된다. 성과 속은 대립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두 얼굴이다.


이 둘의 조화로운 공존은 개인에게는 내면의 균형을, 사회에는 문화적 깊이를 선사한다. 이제는 이분법의 시대를 넘어, 공존의 시대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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