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심하다" 해도 세월의 시계추는 흐르는 강물처럼 여지없다. 최초의 조선인이라 불리는 삼봉 정도전,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일까? 또 그는 왜 고려가 아닌 백성을 택했을까? 그가 추구했던 '민본'을 생각하면서 새해 첫날에 잠시 소환해 본다.
정도전은 고려 말기, 조선 전기의 문인, 학자로 1342년에 태어나서 1398년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며, 이색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내세워 불교를 배척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그는 전략, 외교, 법제, 행정에 밝았으며 시와 문장에 뛰어나 '고려사' 37권을 개수하고, '납씨가' '신도가' 등의 악장을 지었으며, "조선경국전" "경제문감"의 저서와 "삼봉집" 등의 문집이 있다.
삼봉은 조선 왕조 성립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 해동의 '장량'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책략가로 평가된다. 장량이 한 고조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제국을 건설했듯이, 자기도 태조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왕조를 건설한 즉 조선 건국의 실질적 기획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한양 천도 작업을 총지휘하면서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다. 하지만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된 비운의 정치가이다. 그래서 "정치는 비열하다" 하는지도 모르겠다.
삼봉이 꿈꾼 새로운 나라는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 즉 그가 바랐던 조선의 정치 근본은 '위민'이었으며, 그가 바란 이상 국가는 "민본' 그 자체였다.
특히 삼봉은 "임금은 세습되는 직책이라 어리석은 임금이 나올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서 어린 세자 방석을 교육시켜 재상이 중심이 되는 '재상 정치' 실현을 꿈꾸다 이를 두려워한 방원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즉 조선 초기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태종 이방원의 세력과 신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세력이 조선 건국 초기에 부딪히게 되고 그 계기로 정도전은 숙청 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최고의 개국 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업적은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었다. 삼봉은 서양 근세의 민주주의를 무려 300년 앞질러간 꿈꾸는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정도전이 구차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듯이 이방원이 삼봉을 비열한 인물로 조작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도전의 난"은 1398년(태조 7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이방원 일파와 이방석 일파가 무력으로 충돌하여 방원 일파가 승리한 사건을 의미한다.
새로운 나라 조선의 법과 제도, 그리고 수도 한양의 정비까지 모두 책임졌던 삼봉 정도전!
2022년에는 삼봉이 꿈꾼 이상향 "민본"의 모습이 새롭게 조명돼 반영되길 기대하면서 정도전이 정경에 반해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다고 하는 도담 삼봉에서 2022년 새해를 힘차게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