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본다
최근 언론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블러킹 취재(Blocking coverage)" 아닌가 싶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경쟁 매체의 접근을 막아 독점적 보도를 확보하려는 행위다.
겉으로는 치열한 특종 경쟁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과연 이런 방식이 언론의 존재 이유와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블러킹 취재가 드러내는 문제는 단순히 기자들 간의 경쟁 구도를 넘어선다. 언론은 민주 사회에서 시민의 눈과 귀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책무다.
그런데 특정 매체가 "정보의 문"을 걸어 잠그듯 취재 대상을 독점한다면, 시민이 접하는 정보는 당연히 왜곡되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공론장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기자 개인의 차원에서도 블러킹 취재는 심각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원래 기자는 진실을 추적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다.
그러나 블러킹 취재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빨리" 혹은 "경쟁 매체를 배제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기사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단독 타이틀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 버린다. 결국 기사의 질적 심화와 분석은 소홀해지고, "속도와 배제"라는 피상적 경쟁만 남는다.
더 큰 문제는 권력 집단이 이를 교묘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나 대기업은 특정 언론사와만 접촉하며 다른 매체의 접근을 차단하는 전략을 펴기도 한다.
언론 내부의 블러킹 취재 경쟁은 이런 권력의 전략과 맞물려, 특정 언론만의 유리한 접근을 정당화하는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
결국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기보다, 권력의 관리인 프레임 속에서 움직이게 되는 셈이다. 이는 언론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근본부터 흔드는 위험이다.
물론 특종 경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언론사 간 경쟁은 보도의 품질을 높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쟁의 방식이다.
현장을 독점적으로 봉쇄하는 방식은 건강한 경쟁이라기보다, 단순한 차단과 배제일뿐이다. 언론의 품격은 "누구보다 먼저 보도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도했는가?"에서 결정된다.
사건의 표면적 사실을 빠르게 전하는 것보다, 그 이면의 맥락을 파고들고 사회적 의미를 짚어내는 기사가 훨씬 더 가치 있다.
블러킹 취재는 단기적으로는 해당 매체에 이익이 되는 듯 보인다. 독점 보도를 통해 일시적인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고, 광고나 구독자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언론 전체의 신뢰 하락으로 돌아온다. 독자와 시청자는 특정 매체가 정보를 독점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되면, 결국 "언론 불신"은 더 깊어진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 취재 관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자들 사이에 "취재 현장은 공공의 장"이라는 최소한의 합의가 자리 잡아야 한다.
경쟁 매체를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정보 접근의 독점은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언론사는 속보 경쟁에 매달리기보다, 분석과 해설, 탐사 보도의 깊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경쟁해야 한다. 시민은 단순한 속보가 아니라, 사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맥락 있는 보도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블러킹 취재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언론의 주인은 누구인가?" 답은 명확하다.
언론은 특정 기자나 특정 언론사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다. 시민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블러킹 취재는 그래서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언론의 힘은 독점에서 나오지 않는다. 진실을 향한 집요한 탐구, 그리고 시민과의 신뢰 속에서만 굳건히 자리 잡는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자기 경쟁의 방식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블러킹 취재가 언론 현장의 '관행'이 '과거'로만 남을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과 성숙한 저널리즘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