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Oct 16. 2021
누가 그랬던가? "역사는 이긴 자를 미화시킨 기록이라고" 깊어 가는 가을 정취를 맛보려고 덕수궁 뒤뜰을 걸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고대시대나 지금이나 혈기 왕성한 사람들이 삶의 대열에서 서로 "승자가 되겠다"며 혈투를 벌이다가 이긴자는 권력을 잡고, 패배하면 소리 없이 뒤안길로 사라진다. 역사는 그렇게 권력 암투를 토양분 삼아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로 '시대의 주역이 되겠다'고 핏대를 세우다 사라진 수많은 군상들은 역사조차 잘 기억해주지 않는다. 역사가들 또한 그들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한 것 같다.
그런 인물은 최영 장군과 충신 정몽주를 제거하면서 조선의 문을 연 이성계, 왕권을 강화하겠다며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인 정도전을 무참히 살해한 이방원 등 셀 수 없이 많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한 토요토미 히데요시, 유대인을 악덕 상인으로 규정짓고 집단 학살하면서 집권한 히틀러, 강택민을 밀어내고 장기집권에 성공한 시진핑 등 그 쪽 또한 셀 수없을 정도로 많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야 굳이 들어 뭣하겠는가? 하기야 1980년 광주에서 무고한 민간인 수천 명을 살육하고 '정의로운 사회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집권한 인간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역사는 박제화된 박물관 속에 머물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역사는 문화를 낳고, 문화는 역사를 증언한다"고 했다. 나라가 혼란해서인지 '병자호란' 국치가 지금의 우리 정세와 얼핏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난 날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두고 여야가 서로 달리 분석했던 게 한 예이다.
조선시대의 붕당정치가 지금의 여야 정쟁과 너무 흡사한 것 같지 않은가? 여의도에서는 '대장동 게이트'를 두고 삿대질하고 있는 데 과연 어떤 결론을 얻을지 사못 궁금하다. 남인 대 서인, 노론 대 소론에서 이제는 영남 대 호남으로 편을 갈라 주먹질을 하고 있다. 수백년이 흘렀음에도 왜 우리 정치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걸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와는 무관하다'며 그들 간의 혈투를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면서 방관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과연 잘하고 있는건지 궁금하다.
이것도 생존을 위한 한 방편일까? 아니면 그냥 수용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일까? 문득 오래 전에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행렬'이 강하게 뇌리를 스친다.
누군가는 이렇게 외쳤다. "한번 뿐인 인생! 배짱 갖고 살라고. 그리고 세상은 배짱 있는 놈거라고" 나는 지금 어느 대열에 서 있는가? 역사의 풍파를 담고 있는 덕수궁 뒤뜰을 거닐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붉게 물든 단풍잎 하나를 집어 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