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수확하면서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언제 심었는지 까마득하다. 오늘 고구마를 수확하기로 날짜를 정하고 오후에 팔당에 있는 밭을 향했다. 길가에 무성하던 잡풀도 어느새 고개 숙이고 겨울채비를 하는 것 같다.


산기슭의 소나무, 밤나무 등이 각자 곱게 물들이면서 한 해 살이를 마감하고 내년 준비에 들어가는 것 같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은 오가는 사람들에 밟히면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있다.


이곳은 간혹 지나치기만 했다. 색소폰 연주하러 오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창고에서 삽과 호미를 꺼내 들고 밭을 향하면서 마치 농부 같은 착각에 혼자 쑥스러움 마저 느끼게 된다.


실은 고구마 밭 바로 위에 설치해 놓은 농막에서 정작 색소폰 연주는 하면서 작물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고구마 등 농작물은 스스로 알아서 성장했다. 그것을 '자연산'이라는 말로 면피해 보려 한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라고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게으른 농부가? 깨버리고 알찬 수확을 기대했다면 큰 착각 아닐까 싶다.


풍성한 고구마 줄기와 잎사귀는 고구마 씨알이 굵지 않다는 징조라는 게 고향이 시골인 지인의 지론에 응답이라도 하듯 씨알이 콩알만 하다. 게으름에 대한 징벌 아닐까 싶다.


이 와중에도 내년에는 묵혀 놓은 밭에 여러 작물을 심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나는 분명 철없는 농부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가지와 고추 등을 따면서 가을을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소리를 반주삼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색소폰 음률에 실어 보내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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