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는 지혜

살며 생각하며

우리는 무슨 일에 임할 때 그 문제의 해결을 밖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러면 내가 할 바는 무엇이지?"라고 묻기보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도록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또 어떤 일 때문에 고통이나 불행을 당하게 되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모든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마치 나에게는 잘못이 없는데 상대방 때문에 불행과 고통이 오는 듯이 착각을 하게 된다.


사회 모든 기관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책임을 먼저 감당하는 사람이 직장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역할을 풀어나가는 사람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한 인간의 성격은 그의 사람됨이기 때문에 좀처럼 바뀌거나 쉽게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지, 사과나무로 하여금 왜 배나무가 되지 않느냐는 식의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격을 바꿀 수는 없어도 인격의 성장은 얼마든지 기약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성격은 그 사람의 개성과 인품이기 때문에 계속 소중히 여기면서 협조하고 선도하는 책임을 요구한다. 남편과 아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인격은 자기 동일성을 갖추면서도 창조적 생산성을 갖는 것이다. 해서, 인격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아서 크게 자라기도 하고 작게 자랄 수도 있다. 이것은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해져서 자랄 수 없으며 두 종류의 과일을 맺을 수도 없듯이 말이다.


특히 인격은 피상적이거나 외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인 삶의 자기 동일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 자아성의 정신적 성장이 곧 삶의 생산성을 동반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 학문, 도덕성 등이 그런 것이다.


개성은 자기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는 인격성이 되지만, 인격성은 많은 개성들을 포함한 전체적 공통성을 갖게 된다. 나와 너를 연결 지으며 우리와 너희들의 공통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인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국 장관이 자신을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라며 전격 사퇴한 것을 기억한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면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해법을 놓고 당시 무려 2개월 넘게 편을 갈라 상처를 냈던 것 같다. 왜 서로 삿대질을 해야 했는지 마음이 아프다. 문득 법정 스님이 강조하셨던 '세상을 사는 지혜' 문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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