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여 만에 미국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휘몰아친 COVID-19 팬데믹 여파로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미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는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들불처럼 빠르게 번져갔다. COVID-19 확진자 수는 어느덧 30만 명을 훌쩍 넘겨 전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사망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추세라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뛰어넘어 사망자수도 세계 최고를 기록할 것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일등이 또 어디 있을까. 모든 주민들에게 생업을 포기하고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자택격리 명령을 내린 것만 보아도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가늠이 되고도 남았다.
이 와중에 시간은 또박또박 잘도 흘러 어느덧 미국에서의 두 번째 병원 방문일이 다가왔다. 바이러스 전염이 두려워 마트도 못 가는 처지인데 온갖 환자들이 모여드는 종합병원을 이 엄중한 상황에 간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날짜를 보며 한숨만 쉬어댔다.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소식으로 특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닿을 거리에 살고 있는 42살의 6남매 엄마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숨졌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아빠를 이미 몇 년 전 떠나보낸 뒤 이제 엄마마저 없이 남겨진 여섯 명의 아이들도 가슴이 아팠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설명하는 세 단어가 눈에 가시처럼 박혀 떨어지질 않았다.
한국의 코로나 관련 뉴스가 바이러스의 확산 상황과 확진자들의 동선을 상세하게, 낱낱이 알려주는 데 반해 (사는 도시, 성, 직업, 다녀간 식당과 커피숍 이름 등 모든 행적이 공개된다. 투명해서 좋긴 하지만, 당사자가 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뉴스는 그런 친절함은 없다. 이를테면, '00시에 사는 50대 남성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확진되었다.' 혹은, '아마존 창고에서 직원이 확진돼 물류센터를 셧다운하고 소독을 했다.' 이 정도가 전부다. 물론 이제는 하루에도 수만 명씩 확진자가 쏟아지는 마당에 일일이 열거하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대신, 예방 수칙을 훨씬 비중 있게 다루는데, 비누를 이용해 손을 20초 이상 깨끗이 씻고 노약자나 기저질환자는 특히 더 취약하니 외출을 삼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다시 하고, 계속한다. 폐, 심장질환이나 당뇨를 가진 사람, 그리고 암환자가 기저질환자로 분류된다.
뉴욕시에서 배포한 코로나 바이러스 대비 행동지침
'고위험 기저질환자'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상황 자체가 불안하고 두려운데, 같은 병을 가진 옆 동네 비슷한 또래 아이 엄마가 암 투병으로 면역력이 저하돼 코로나로 사망한 소식까지 들으니 병원 나들이가 더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평생 마스크라고는 써 본 적 없거니와 마스크는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없다며 오히려 마스크 쓴 동양인들을 힐난하는 개념 없는 사람들로부터 이 치료제 없고 치사율 높은 신종 전염병을 얻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3주에 한 번씩 표적항암제를 맞아야 하는 처지이고, 앞으로도 계속 '생존' 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이 의식을 거르면 안 되었다. 일, 이주만 미룬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최대한 조심해서 치료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합리적인 결론을 냈지만 불안감으로 요동치는 심장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드디어 오지 말았으면 했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자택 격리 명령이 시행된 뒤 처음으로 집이 아닌 건물에서, 모르는 이들과 뒤섞이게 될 터였다. 전신 방호복은 못 입더라도 전신을 꽁꽁 싸매기라도 해야 할터. 선글라스를 써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몇 년 전 멋 내기 용으로 사놓고 처박아뒀던 도수 없는 커다란 뿔테 안경이 생각났다.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안경을 딱 얹어주니 얼굴은 전부 커버가 가능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 손잡이 등을 만질 것에 대비해 위생장갑도 챙겼다. 피부가 드러난 곳은 이마와 목, 귀뿐이었다.
예약 시간은 9시 정각.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악명 높은 시애틀 도심 교통체증을 감안해 일찌감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는데 출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가 한산하다. 아, 다들 회사 안 가고 학교도 안 가지 참. 코로나 덕분에 막힘없이 쌩쌩 달려 예상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외부에 위치한 주차빌딩에 차를 주차하고 병원 로비로 들어서자 지난번 방문 때와는 달리 거쳐야 하는 절차가 생겼다. 마스크를 쓴 병원 직원들이 방문자 한 명 한 명 열을 재 체온을 확인한 뒤 출입을 시키고 있었다. 한국은 확진자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했던 조치를 이제야 시작했구나. 질문 내용도 달라졌다. 지난번 방문 때는 '2주 이내 중국,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열이나 호흡기 질환 증상이 있는지' 물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 중국 이야기는 쏙 빠지고 열과 의심 증상이 있는지만 질문한다. 이제 일등 먹었으니 다른 나라는 신경 안 써도 되는 거다.
체온 측정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에 대한 문진을 마쳤음을 표시하는 손바닥만 한 스티거를 가슴팍에 붙이고 혈액종양내과가 위치한 2층으로 향했다. 혹여나 마스크 썼다고 인종차별적인 위협을 당하거나 하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던 것이 민망스러워질 정도로 많은 수의 환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본인 진료를 기다리는 열댓 명 남짓의 환자들 중 어림잡아 절반 이상은 되는 듯했다. 한국 암센터처럼 시장통 느낌으로 붐비지도 않고, 널찍한 대기실에서 띄엄띄엄 거리를 유지하고 앉으니 긴장이 좀 풀리는 듯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기실 한쪽에 마련돼 있던 커피 코너가 폐쇄됐다는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텀블러를 들고 오는 건데.
십 분여가 흘렀을까,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체중을 재고, 리클라이너 체어와 세면대, 작은 화장실이 딸린 주사실로 안내받았다. 오늘 나를 담당하게 된 간호사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정맥 주사를 전담하는 또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 입구에서 체온을 재던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의료진들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있는데 이분은 의료용 마스크에 보안경까지 갖췄다. 코로나 의심 환자가 올 가능성이 적은 암병동이라 그런 건지, 의료진의 보호장비 착용은 자율에 맡겨지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제인이고, 오늘 정맥 주사를 놓을 거예요. 성이랑 생년월일부터 말해줄래요?"
"넵, 성은 고. 생년월일은..."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는 이름과 생년월일 확인은 한국 병원이나 이곳이나 똑같구나. 따끔! 주삿바늘을 혈관에 찌르고 의료용 테이프로 고정시킨 간호사가 눈을 맞추며 다시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오늘 좀 어때요?"
참으로 다정했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온갖 증오범죄와 인종차별 기사를 보며 위축됐던 마음이 살며시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뭐 상황이 그렇잖아요. 바이러스 때문에. 애들은 학교도 안 가지 남편은 재택근무 하지. 24시간 동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에고 힘들겠네... 애들은 몇 살 이에요?"
"세 살, 다섯 살이요"
"Oh noooooooo!" (오 노!)
아이들이 세 살, 다섯 살이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두 명의 간호사는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 노~~!"를 외쳤다. 역시 엄마들은 안다. 미취학 아동 둘을 돌보는 건 그 어떤 극한직업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옴짝달싹 못하고 집에 갇혀 애들 계속 보는 게 지치긴 하지만 당신들 같은 의료진만 하겠냐고, 정말 고생이 많다고 이야기했더니 자기들은 이미 애들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이라고. 다 키웠다고. 집에서 애기 둘 보는 당신이 더 힘들 거라고 이야기해준다.
"오늘, 삼주만에 혼자 나온 거예요. 병원이 아니라 휴가 온 것 같네요."
"당연하지! 주사 다 맞고 낮잠도 한 숨 자고 가요."
세 여자가 깔깔거리고 있는 가운데 주치의인 닥터 로빈슨이 조수를 대동하고 주사실로 들어왔다.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묻는 그녀에게 유쾌한 간호사들은 우리 지금 '엄마 탈출 기념' 파티하는 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즉석에서 파티에 초대받은 닥터 로빈슨은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환자용 리클라이너 체어에서 대략 6 feet(미국에서 지킬 것으로 권장하는 사회적 거리) 만큼 떨어진 의자에 앉아 내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그녀는 지난번 주사 이후 심장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는지, 요즘 식욕은 어떤지 이것저것 물어보다 내 입술에 난 물집을 발견했다. 크림으로 된 약을 바르고 있는데 잘 낫지 않는다고 했더니 먹는 약이 더 잘 듣는다며 처방을 내렸다. 힘든 시기인 줄은 알지만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리고 혹시라도 열이 난다거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의심되는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자기 오피스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지난번 상담 때 내가 1차 진료를 담당할 프라이머리 닥터가 아직 없다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인 듯했다. 만약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제대로 치료는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 준 의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했다.
삼십여 분이 흘러 주사가 끝나자 정맥 간호사가 팔뚝에서 바늘을 뽑으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의자 눕혀줄까요?"
"푸핫,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가서 밥해야죠"
"굳이 요리를 해야 되나, 뭐 사 가지고 들어가면 되지"
마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자고 가겠다면 진짜로 그러라고 할 기세였다. 항암주사실에서 낮잠 때리고 갈 정도로 똥 배짱은 아닌지라 지혈만 끝내고 일어섰지만 온열 기능에 안마 (라기보다는 진동)까지 되는 폭신한 의자에서 몸에 주삿바늘 달지 않고, 삼식이들 밥 걱정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한숨 푹 자는 상상을 잠깐 하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썩 좋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기분이 썩 좋기만 한 게 아니라 아주 좋았다. 코로나로 반 감금생활을 하게 된 이래 가장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왜 좋을까? 집으로 차를 운전하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거 없었다. 사람을 만났고, 대화를 했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게 전부다. 이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동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구나. 아리스토텔레스 님의 혜안이 새삼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이래저래 병원은 치유를 주는 곳임은 분명한 듯하다. 신체의 치유든, 마음의 치유든. 오늘은 둘 다 얻었으므로 억 소리 나게 비싼 미국 병원비에 대해 아깝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주지사는 워싱턴주 주민들에게 내린 자택 격리 명령을 한 달 더 연장했다. 맙소사. 3주마다 돌아오는 진료일은 이제 두려운 날이 아닌 손꼽아 기다리는 이벤트가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