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픽션
70분
컬러
미국
영화는 미래가 없는 같은 마을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한 10대의 삶을 그린다. 그의 삶은 소매치기, 버려진 광산에서 시간 보내기, 그리고 어두운 고용 전망과 노동 운동의 쇠퇴로 인한 고군분투로 이루어져 있다.
한 폐광촌의 황량한 풍경 위로, 어느 청년이 던진 돌멩이가 공중을 가르며 낙하한다. 이 단순한 동작 속에 <누가 울새를 죽였나?>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트래비스 윌커슨의 카메라는 미국 몬태나주 뷰트라는 산업 유령도시에서 방황하는 청년 바렛의 일상을 통해, 자본주의가 남기고 간 인간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다양한 화질의 영상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마치 시간이 녹슬어 가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몬태나주의 작은 광산 마을 뷰트. 한때 번성했던 이곳은 이제 폐광과 실업자들로 가득한 유령도시가 되었다. 트래비스 윌커슨 감독의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바로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 바렛과 그의 친구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넘나드는 실험적인 형식으로, 산업화의 유산과 포스트산업 시대의 인간 조건을 예리하게 조명한다.
영화는 바렛이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훔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카메라는 범죄 자체보다는 그의 손놀림과 표정을 집중적으로 포착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절도 장면을 넘어, 한 인간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순간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경찰서에서 바렛이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는 이 시스템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의 고백이다.
이 영화의 진가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바렛과 그의 친구들이 폐광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1920년대 광부 파업의 영광을 회상하는 장면은 특유의 아이러니를 풍긴다. 그들의 대화는 현재의 빈곤보다 과거의 투쟁을 더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카메라는 이들을 정면에서 조용히 응시하며, 산업화 시대의 꿈이 어떻게 빈곤한 추억으로 전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형식적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HD, 미니 DV, 8mm 등 다양한 화질의 영상이 혼용되며 시간의 층위를 구축한다. 폐광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종종 360도 회전하며 이 황폐한 풍경을 조망한다. 이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미국의 화려한 도시 풍경 뒤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포크송은 1930년대 노동운동가들의 투쟁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과거와 현재의 노동자 처지를 대비시키는 교묘한 장치다. 아일랜드 클로깅 리듬이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결합할 때, 우리는 노동문화의 정신이 어떻게 변형되어 계승되는지를 목격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자본주의가 점점 더 추상화되는 가운데, 이 영화는 육체적 노동의 잔해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윌커슨의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한 청년의 성장기가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마지막 유산이자 포스트산업 사회의 첫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바렛이 폐광 입구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미래를 기다리는 한 인간의 초상을 완성한다. 그의 등 뒤로 펼쳐진 광산의 잔해는 산업화 시대의 무덤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미래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