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나간 수저-첫 해외 무대의 설렘과 쓰라린 교훈

by Sam Lee

4.1. 세계로 나간 수저 - 첫 해외 무대의 설렘과 쓰라린 교훈


첫 해외 무대의 설렘과 쓰라린 교훈


39살 늦은 나이에 한식 숟가락과 젓가락을 통해

우리 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수출하겠다는 꿈을 품고,

영어 회화를 배우기 위해 종로의 외국어학원 문을 두드렸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영어 공부는 쉽지 않았다.

단어는 좀처럼 외워지지 않았고, 문장은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레벨 테스트 점수는 오르지 않았고,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는 꾸중도 하면서도 마치면 힘이 되는 응원도 빼먹지 않았다.


힘든 과정에도 포기하지 않고 2년 가까이 수업을 들으며 발음을 다듬고 표현을 익혔다.

서툰 영어였지만, 조금씩 외국인 앞에서 말할 용기가 생겼고,

마침내 ‘내 목소리로 내 제품을 소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20240906_141753.jpg 해외전시회 바이어 미팅


그 자신감 하나로 세계 무대에 도전했다.

서울 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 수상으로 해외 판로 개척 지원사업 기회를 얻었고,

예상보다 빨리 첫 해외 무대인 홍콩 메가쇼 전시회에 설 수 있었다.


전시 하루 전 부스를 꾸미기 위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시 기간 내내 각국의 언어가 뒤 썩인 활기 속에서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준비 부족과 경험 미비로 첫 전시는 영광과 동시에 참패였다.


두 번째 도전은 수출역량강화 사업에 선정되어 참가한 일본 도쿄 빅사이트 ‘기프트쇼’였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디자인 취향과 가격 구조,

문화적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디자인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 모두 한계를 드러냈고,

철저한 시장분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다시 찾은 홍콩 메가쇼에서

국내 굴지의 리빙 브랜드 신세계인터내셔널 JAJU와 계약을 성사시켰고,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CJ ENM의 오덴세 브랜드와 계약도 체결했다.




이때 국내 대형 바이어들이 해외 소싱을 위해 전시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고,

해외 전시가 국내 시장 확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20240906_114942.jpg 메종오브제 전시회(프랑스, 파리)

이후 미국 라스베이거스 ‘ASD 전시회’에서 첫 미국 수출을 성사시켰고,

중국 광저우 ‘캔톤페어’에서는 첫 중국 수출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시아 신흥 시장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가격 경쟁력과 문화 이해 부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비안테’ 전시회에서는

국내 온라인 전문 유통사를 만나 새로운 판매 채널을 확보했고,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에서는 코트라(KOTRA) 지원을 받아

첫해에 파리의 마레지구의 유명 편집숍 메르시(Merci)에 입점하며 디자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듬해 같은 전시회에서 서울경제진흥원(sba)의 지원으로 뉴욕현대미술관인 MoMA 바이어와 연결되었고,

그들은 한국에 직접 방문한 후 정식 입점을 결정했다.

모마.jpg 모마(MoMA) 디자인 스토어

이 과정에서 배운 것은 분명했다.

해외 바이어에게 중요한 것은 세련되면서도 동양적인 감각을 담은 디자인,

그리고 유행을 넘어선 세계 트렌드에 부합하는 제품 이미지였다.


반면 국내 바이어는 해외에서 소싱하려고 국제 전시회에 왔다가,

커트러리를 만드는 한국 기업이 이곳까지 나올 정도라면 충분한 경쟁력과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해외보다 훨씬 편하게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그들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돌이켜보면,

해외 전시는 단순한 제품 홍보 무대가 아니었다.

해당 국가의 문화 이해,

시장분석,

현지 네트워크 구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복합적인 과정이었다.


수많은 실패와 작은 성공들이 모여,

세계 무대 위에서 ‘한국 수저’의 세계화 길을 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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